발기부전치료제구입 [복길의 내일의 태도]토끼풀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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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5-10-22 05:16본문
내가 자란 세계관에서 게임이란 학생이 해서는 안 될 불량한 활동이자, 단속의 대상이었다. 학교 선배 중 하나가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되었다는 것에 분노하다 급기야 그의 미래에 저주를 퍼붓고 말았던 교장 선생님의 담화는 그 세계관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억이다. 그렇게 축적된 편견들 때문에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의 유일한 게임 경력은 일곱 살에 했던 ‘슈퍼 마리오’뿐이었다. 그러니 2년 전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을 플레이하며 내가 흘린 뜨거운 눈물은, 게임을 모르고 살아온 지난 20여년의 한이자 설움이었다…!
억압을 ‘백지’로 거부한 청소년들
‘리토의 마을’은 이 게임의 배경인 ‘하이랄 왕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다. 조류 인간들이 사는 이 마을은 마왕의 저주로 인해 한파가 닥쳐 많은 시설이 파괴되고 물자 공급마저 끊긴 곳으로, 방한복 세트가 없으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춥고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리토의 마을 초입에 있는 ‘토끼풀 신문사’의 존재는 내게 그런 추위와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게 했다.
‘토끼풀 신문사’는 편집장 세나가 천재지변으로 망한 ‘리토의 마구간’을 인수하며 시작된 하이랄 유일의 언론사다. 세나는 직원들과 함께 마왕의 부활로 초토화된 왕국의 상황을 시시각각 취재해 각 지역의 마구간에 호외를 배포하는데, 플레이어는 그 신문을 읽고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단서와 부차적인 과제들을 받고 수행하게 된다. 왕국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들러야 하는 곳이 신문사라니, 진실을 좇는 것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너무도 당연해서 매력적이지 않은가? 손상된 기억을 복원하고, 은폐된 진실을 추적하는 그 작은 신문사에 머물기 위해 나는 매번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었다.
토끼풀 신문사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청소년 지역 언론이 서울에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얼마 전 한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서울 은평구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기자 32명이 만드는 ‘토끼풀’은 ‘학교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표방하며 지난해부터 매달 발간 중인 지역 신문이다. 토끼풀이 얼마나 견실하게 활동을 해왔는지는 홈페이지에 기록된 지난 기사 몇편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구내 중학교의 학생 인권 침해 실태 문제, 시내버스 파업 문제 같은 로컬 현안부터 12·3 내란 사태, 지역균형발전, 인공지능과 기후위기 이슈까지. 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이 세계의 구성원임에도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기록해 왔다.
그런데 얼마 전 토끼풀은 ‘언론 탄압에 항의’한다는 이유로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사건은 지난여름 몇몇 기자가 속한 은평구 모 중학교에서 신문 전량이 압수되며 시작되었다. 신문 300부와 기자 모집 포스터를 압수당한 토끼풀이 정보공개 청구를 요구하자 학교는 ‘교육 중립성 위반’ ‘학부모 민원 예방’ 등과 같은 모호한 이유로 응답을 피했고, 그 결과 토끼풀은 ‘백지 발행’을 감행한 것이다.
학교 측의 이러한 조치와 태도는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언론 탄압이다. 하지만 학교 측은 학생들이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억압을 ‘보호’로 둔갑시켰다. 청소년들이 세상에 대해 말하면 그것을 부적절한 것으로 규정해 미리 차단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사전 검열 형태의 ‘보호’다. 토끼풀의 ‘백지’는 바로 이러한 보호를 ‘말하지 않음’으로 거부하는 선언인 것이다.
진실 좇기는 가장 기본적인 저항
올해 여름 출간된 <고등학생운동사>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고등학생운동(고운)’의 역사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 사회 모든 변혁의 순간에 청소년들이 존재했음을 복원하는 이 책 속에서 당시의 10대 운동가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고통스럽게 기술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나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원했던 것은 ‘10대가 말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갈망임을 알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10대들이 신문사에 모여 지도를 펼치고, 단서를 수집하고, 멋진 모험을 시작했다. 금지된 구역을 열어젖히고, 다른 세상의 말들을 받아 적으면서. 졸업하면 ‘뿅’ 하고 사라지는 10대 시절의 추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갈 앞으로의 세계를 위해서. 백지를 내건 그들의 용기에서 과거의 나와 당신을 발견한다. 실컷 게임을 하며 저항하는 나를, 실컷 머리를 물들이며 저항하는 당신을.
오래전 폐쇄된 신문사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기사를 쓰고 있었다.
3년 전 이맘때 부산 해운대구에서 굉장한 사진가 두 명을 만났다. 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 랄프 깁슨과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라 불리는 강운구. 건메탈의 눈빛을 가진 랄프 깁슨이 말했다. “내 오랜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멋진 날입니다.” 고은문화재단이 설립한 ‘고은 깁슨 사진미술관’ 개관식이었다. 축사를 건넨 사람은 동년배의 강운구 작가였다. 개관 행사를 마친 강 작가는 나와 함께 랄프 깁슨의 사진을 감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검은색의 표현력이 참 탁월해. 근데, 그의 사진에 현실은 있을까?”
둘의 만남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50여 년 전, 강운구 작가는 이미 랄프 깁슨의 사진집을 보았기 때문. 랄프 깁슨은 강 작가가 내민 그의 사진집 <몽유병자 The Somnabulist>(러스트럼, 1970) 초판본에 싸인을 했다. 이듬해 나온 랄프 깁슨의 사진집 <블랙 3부작 The Black Triology>(고은사진미술관, 2023)에는 강운구 작가의 글이 수록됐다.
이러한 인연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였을까? 이 두 사진가의 사진전이 부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강운구 작가의 <우연과 필연>, 그리고 랄프 깁슨의 <블랙 3부작>이다. 강 작가의 사진은 수영만 요트경기장 근처의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랄프 깁슨의 사진은 해운대구청 앞 고은깁슨사진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고은 깁슨 사진미술관은 ‘몽유병자The Somnambulist, 1970’, ‘데자뷰Deja-Vu, 1972’, ‘바다에서의 날들Days at Sea, 1974’로 구성된 《블랙 3부작The Black Trilogy》을 재조명한다. 1970년대 초기 대표작 젤라틴 실버 프린트 120여점이다. ‘몽유병자’는 랄프 깁슨이 자기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출판사 ‘러스트럼’을 차리고 만든 첫 번째 사진집이다. 2년 후 ‘데자뷔’가, 또 2년 후에는 ‘바다에서의 날들’이 제작됐다. 전시장 곳곳에는 랄프 깁슨의 다양한 사진집과 한국과의 인연을 보여주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강운구 작가와 교류를 담은 사진들까지. 전시는 내년 8월까지 열린다.
주인(서수빈)은 열여덟 여고생이 지닐 수 있는 활기를 힘껏 그러 모은 듯한 인물이다. 짓궂은 장난을 치고 깔깔 웃다가도 선을 넘었다 싶으면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안다. “야, 이주인~!” 애정 섞인 목소리가 반에 울려퍼지는 게 일상인, 누구라도 친해지고 싶은 그 아이.
윤가은 감독(43)의 6년 만 신작 <세계의 주인> 속 주인은 보는 사람도 명쾌하게 단순 활발하다. 그와 관련된 질문의 빈 칸을 누구라도 쉽게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좋아하는 운동은 (태권도), 싫어하는 과일은 (사과), 최근 관심사는 (연애)···,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불가해한 일이 벌어진다. 반 친구 수호(김정식)이 전교생을 상대로 시작한 서명 운동의 일부 문장이 틀렸다며 주인이 동참을 거부한 것. 친구들은 ‘사소한’ 일로 고집을 부리는 그를 이상하게 여긴다. 주인에게는 그를 추궁하는 익명 쪽지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우리들>(2016)과 <우리집>(2019)에서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아이들의 우정과 혼란을 섬세히 담았던 윤 감독이 이번에는 10대 후반 고등학생들에게 렌즈를 드리웠다. 주인공의 나이대가 올라갔지만 윤 감독의 세상 속 아이들은 여전히 찬란하게 생동한다. 교실과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은 기본, 연애하며 성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다.
영화는 주인의 일상의 다양한 장면을 빠르게 보여준다. 그가 어떤 아이인지 관객이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그러다가 벌어진 수호와의 갈등은 반 친구들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의문을 남긴다. ‘쟤가 저럴 애가 아닌데, 왜 저럴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가 본 게 전부가 아닌가?’ 주인의 밝음에 매료됐던 것만큼 순식간에 그를 의심하게 한다. 그 모든 순간 주인은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고 있을 뿐인데도.
<세계의 주인>이 다루는 소재는 가볍지 않다. 지난 15일 언론 시사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윤 감독은 “도망쳐다녔던 이야기”였다고 했다. 10대 여자 청소년이 솔직하고 대담하게 성과 사랑을 탐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불편하고 힘든 요소가 침입”하곤 했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 감독은 “장식을 걷고 10대 아이들이 진짜 겪는 경험이 무엇일지 들여다 보니, 아이들이 성과 사랑을 경험할 때 겪는 공포, 불안, 위험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들어오더라”고 설명했다.
어려워서 풀지 못했던 이야기를 코로나19 팬데믹 때 다시 붙잡고 썼다. ‘마지막 영화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낸 용기였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수많은 얼굴 중 아직 (미디어에) 나오지 않은 얼굴,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얼굴”을 찾아나갔다.
가족은 주인의 세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이다. <우리들>부터 윤 감독과 합을 맞춘 배우 장혜진이 어린이집 원장인 주인의 엄마 태선을 맡았다. 의연하고 다정하지만, 빈 텀블러에 가족 몰래 독주를 담아 마시는 인물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연기를 지도할 때는 대본을 주기보다 구두로 연출했던 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를 분석·연구한 성인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바쁜 엄마 대신 청소를 하고, 어린 남동생을 돌보는 주인의 모습에서는 일 혹은 다른 이유로 부재한 부모님 때문에 요리 등을 곧잘하던 <우리들>·<우리집>의 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윤 감독은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을 때 스스로 한 뼘 자란다. 엄청난 모험이나 실수를 하거나, 어떤 큰 일을 겪으면서 고군분투한다. 그 순간이 외롭고 아프기도 하지만 성장의 필수 요건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세계의 주인>은 어떤 일이 있었건, 없었건 ‘사랑의 세계’를 탐구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고 나아가는 주인의 열여덟을 그린다. 저마다의 선입견을 성찰하게 하면서도 명랑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윤 감독은 증명해 낸다.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로 초청되는 등 국제 영화제에서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제9회 중국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는 2관왕을 차지하며, 한한령 여파 속에서도 중국 배급사를 확정했다.
‘진짜 같은’ 연출로 정평이 난 윤 감독은 현실적인 교실 풍경의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주인 역의 배우 서수빈을 비롯, 대부분의 학생 배역은 20대 초중반의 장편 영화 경험이 적은 배우들이 맡았다. 윤 감독은 “가장 평범한 고등학생의 얼굴을 하면서 연기 경험 상관 없이 진심인 친구를 모아 놓고 보니 신예들이었다”면서 “‘그만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자기들끼리 연습을 하더라. 자연스러움은 그 친구들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감독의 ‘이 다음’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초등학생, 고등학생을 넘어 더 자라날지’를 묻자 그는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인 거라 끊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감독으로서, 작가로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나를 내려놓고 이야기를 따라갔다. 이창동 감독님이 늘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조금은 경험한 것 같다. 내려놓을 수록 더 좋은 이야기를 만나겠구나. 그 작업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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