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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무소 박성재 영장 기각, 또다시 ‘법기술’ 용인해준 법원 [김민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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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5-10-2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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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무소 1990년 12월 3일 신문사에 입사했다. 이후 해마다 12월 3일은 입사 기념일이었다. 2024년, 그날의 의미가 바뀌었다. 12월 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회사로 달려갔다. 몸이 반응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든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옳지 않다’는 감각, 주권자의 상식이 작동했을 터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박성재의 감각과 상식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박성재는 계엄 선포 2시간 전인 밤 8시 14분쯤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이후 윤석열과 국방부 장관 김용현 등으로부터 계엄 관련 설명을 들었다. 이 자리엔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도 있었다.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에는 박성재가 계엄 관련 서류로 추정되는 문건을 받아보는 모습이 담겼다. 사전 회동 참석자 중 박성재를 제외한 3인은 모두 구속됐다.
국무회의가 끝난 후 박성재는 법무부로 가서 실·국장 회의를 열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서(내란중요임무종사 등)에 따르면 박성재는 세 가지를 지시한 것으로 나온다.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 출국금지팀 대기, 구치소 수용 공간 확보다.
특검팀은 합수부의 경우 반국가세력·부정선거 등을 수사할 예정이었고, 출국금지팀 대기와 구치소 수용 공간 확보는 체포될 정치인의 수감을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류혁 감찰관은 계엄 관련 회의임을 확인하고 즉시 사표를 냈다.
박성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뜻밖의 방어 전략을 동원했다. “그땐 내란인 줄 몰랐다. 통상적 업무를 했을 뿐이다.” 계엄 선포 담화문도, 포고령 내용도, 군과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는 상황도 제대로 몰랐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고 한다.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TV 생중계로 지켜봤는데도 본인만 몰랐다는 거다.
이 황당한 궤변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믿어준 곳이 있다. 법원이다. 지난 15일 박정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성재에 대한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피의자가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와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했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핵심 법률 참모이자, 국가소송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법률적 대표자다. 그 이전에 박성재는 고검장까지 지낸 법률가다. 계엄법상 계엄 선포는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일 때만 가능함을 모를 리 없다.
그날 밤 대한민국은 평화로웠다. 시민 대다수가 귀가해 TV를 보거나 잠을 청할 즈음이었다. 게다가 포고령에는 ‘전공의 처단’이라는, 비상사태 시에도 언급하기 어려운 내용이 포함됐던 터다. 평생 법전 한 번 들춰본 적 없는 시민들이 직감적으로 위헌·위법성을 깨닫고 거리로 뛰쳐나온 이유다. 대통령의 사전 설명을 들은 법무부 장관이 위헌·위법성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제 코가 석자입니다.” 박성재는 지난해 12월 1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합류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돌이켜보면 수사받을 가능성을 이미 염두에 뒀던 것 같다. 이후 변호인단과 함께 법전을 뒤져 형법 16조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해당 조항은 ‘자기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 벌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전 세계가 다 아는 군경의 국회 봉쇄를 자신만 몰랐다는 게 ‘오인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12·3 내란 이후 법원에서 납득하기 힘든 판결·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 취소, 조희대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사건 초고속 파기환송은 그중 금·은메달을 다툴 만하다. 박성재 영장 기각도 포디엄(시상대)에 오르기 충분하다.
법원이 박성재 식 방어 논리를 광범위하게 인정할 경우, 향후 어떤 공직자도 보스의 잘못된 행동에 ‘안됩니다’ 할 필요가 없다. 법정에서 ‘그땐 위법인 줄 몰랐다’ 하면 그만이니까.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유의할 대목이 있다. ‘법관의 양심’은 독불장군식 아집을 뜻하지 않는다. 법리와 객관에 근거한 양심을 말한다.
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민의 법감정을 거론하면, 일부 법률가들은 이를 법적 무지나 포퓰리즘과 결부시킨다. 오만이다. 국민의 법감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민주국가의 시민으로 교육받고 경험하며 쌓아올린, 나름의 ‘인식체계’다. 법은 주권자 모두의 것이다. 법기술자들의 노리갯감일 수 없다.
박정호 부장판사에게 묻고 싶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의 계엄 선포를 접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 공직자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말이다. 이런 질문조차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불경(不敬)인가?
“하고 싶은 일에 확신이 있으면 ‘돌아이’ 짓도 꾸준히 해라.”
방송인 김구라는 <스타 특강쇼>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 하는 일이라도 계속하다 보면, 그 꾸준함이 쌓여 언젠가 개인의 브랜드 가치로 인정받는 순간이 온다는 뜻일 것이리라. 이걸 패션에 적용해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근육질 몸매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팔토시를 한, 발라드 가수 KCM이다.
토시가 어떤 아이템인가. 여름에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사무실이나 화방에서 옷이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겨울에 보온을 위해 착용하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KCM은 데뷔 때부터 몸에 딱 붙는 민소매 티셔츠에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내놓은 채 팔토시를 했다. 일부는 ‘저게 무슨 패션이냐?’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러한 비주얼은 통념적 ‘발라더’ 패션에 익숙한 이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팔토시는 ‘시그니처 아이템’을 넘어 ‘시그니처 룩’으로 자리 잡았다. 개인주의보다 획일적 안정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는 데뷔 이후 꾸준히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려왔다. 어떤 옷차림에도 팔토시를 매치해 전체적인 조화를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탓이다.
토시는 밀착감이 중요한 만큼 감싸는 부위에 볼륨이 있거나 주름이 지면 안 된다. 그래서 다리토시 역시 맨다리, 레깅스 혹은 스키니 바지 위에 착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팔토시 역시 맨투맨이나 오버핏 셔츠, 헐렁한 니트와 함께 착용하기 어렵고, 몸에 어느 정도 붙는 이너 티셔츠 위에 해야 팔토시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다. 모든 패잘알(패션을 잘 아는 사람)이 말하듯, 코디에서 중요한 건 더하기가 아닌 빼기이므로 토시처럼 사족으로 보이는 아이템은 유행템이 될기 어렵다. 대중적 활용이 어려운 아이템일수록 유행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KCM은 ‘패션 변화’, 특히 ‘메이크오버’를 콘셉트로 한 프로그램에 단골처럼 섭외된다. 최근에도 그는 넷플릭스 예능 <옷장 전쟁>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문제의 아이템은 역시 팔토시였다. 데님 조끼에도, 후드 티셔츠에도, 오버핏 셔츠에도—팔토시는 빠지지 않았다. 특히 후드나 셔츠 소매를 걷어 맨팔 위에 착용하는 그의 스타일은 언제나 ‘팔토시 종결룩’으로 귀결됐다. 이에 패션 전문가들은 연신 옐로카드를 꺼내 들며, 새로운 스타일링을 권하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그의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면 그가 자기 분위기와 체형에 맞게 얼마나 옷을 잘 입는지 알 수 있다. 사실 KCM의 체형은 근육질에 상체가 상당히 크고 다부져서 핏과 비율이 중요한 패션에서 옷맵시를 살리기 어려운 체형에 속한다. 그럼에도 KCM은 분할과 비율을 적절히 활용해 전체 실루엣을 슬림하고 균형 있게 연출한다. 대표적인 예가 반소매 티셔츠와 데님 조끼의 조합이다. 상체가 큰 체형일수록 맨투맨처럼 단색 아이템은 부피감을 더하지만, 그는 데님 조끼로 시선을 분산시켜 한결 가볍고 길어 보이게 했다. 또 다른 스타일에서는 베이지 팬츠에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 검정·흰색·회색이 어우러진 스니커즈를 매치해 색의 조화를 살린 깔끔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신인 시절에는 어떻게든 대중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본업만 잘하는 것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면, 주목받지 못하는 가수나 배우, 개그맨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KCM과 그의 소속사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 선택은 솔로몬의 선택이라 불릴 만큼 현명한 결과로 돌아왔다.
최근 KCM은 자신의 시그니처 아이템 팔토시를 토시살과 연관지은 한 샌드위치 광고까지 찍었다(‘토시살’이라는 말이 팔토시 모양을 닮아 붙은 이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니 어찌 그가 팔토시에 대한 애정을 멈출 수 있을까. 아직도 KCM이 패알못처럼 보이는가? 그렇다면 성공이다. 패션 전략가는 때로 본인을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KCM에게 배웠다.
<이문연 패션 코칭 전문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2018년 겨울, 불을 밝힌 강남의 한 재즈클럽에 휠체어를 탄 노(老)가수가 들어선다.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며 반기는 사람들. 미소 띤 얼굴로 관객을 바라보던 노가수는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한다. 한국 재즈의 산실이라고 일컬어지는 ‘클럽 야누스’의 40주년 축하공연. 클럽의 안주인이자 반세기 가까이 야누스를 이끌어 온 재즈 가수 박성연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이었다.
한국 재즈계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1세대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관객을 만난다. 오는 22일 개봉을 앞둔 영화 <디바 야누스>(감독 조은성)는 재즈가 곧 인생이었던 박성연의 불꽃 같은 삶을 스크린에 되살렸다.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성연은 이화여고를 졸업한 후 미8군 무대 가수를 뽑는 오디션에 합격하며 재즈 인생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재즈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박성연은 AFKN에서 흘러나오는 베니 굿맨, 글렌 밀러, 마리오 란자 등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다. 오디션 무대에서 유명 재즈 스탠다드 곡 ‘Stardust’, ‘Cheek to Cheek’, ‘Just In Time’ 등을 불렀다. 영화는 “그땐 재즈를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그런 곡을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박성연의 모습을 비춘다.
점차 재즈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숙명여대 작곡과에 진학한다. 1970년대 초반 소공동의 뮤직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 등과 합을 맞춰 공연 활동을 하고 동남아와 일본 등 해외 페스티벌 무대에도 서는 등 공연 활동과 병행하느라 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클럽 야누스’다. 박성연은 1978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재즈를 부르고 싶다”는 바람으로 한국 최초의 토종 재즈 클럽 ‘클럽 야누스’를 연다. 1960~70년대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재즈는 나이트클럽이나 밤무대에선 반기지 않는 장르였고, 성인가요와 트로트가 인기를 끌며 음악 하던 사람들 사이에선 ‘재즈하면 굶어 죽는다’라는 말이 나돌 때였다. 딸이 술집을 여는 줄 알고 반대하던 그의 어머니는 “술집을 하면 지옥에 가서 화롯불을 머리에 이고 있게 될 것”이라며 만류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신촌역 앞 작은 화실을 개조해 만든 클럽 야누스는 곧 한국 재즈의 산실이자 연주자들의 사랑방이 된다. 생계를 위해 호텔과 캬바레 등에서 연주를 하던 이들이 매일 밤 야누스에 모여 즉흥 재즈 연주를 펼쳤다. 영화는 야누스에서 국내 1세대 재즈뮤지션들이 공연 장면을 담은 흑백 사진 등을 보여준다. 신관웅, 이판근, 김수열, 조상국, 이동기, 최선배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이 보인다. 박성연도 늘 무대 가운데에서 관객과 연주자 사이를 잇는 존재로 섰다.
야누스는 수많은 재즈 뮤지션의 탄생하고 성장한 한국 재즈의 성지이자, 그 음악처럼 자유와 해방, 공존의 공간이었다. 엄혹했던 시절, 야누스 앞을 지나던 이들은 문밖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이끌려 재즈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그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관객이 점점 줄어들며 재정난이 악화했고 신촌에서 혜화동, 서초, 청담동으로 살림을 옮겨다녀야 했다. 박성연은 집을 팔고 평생 모은 음반 1500장을 처분하면서 야뉴스를 지켰다.
박성연의 오랜 후배인 재즈 뮤지션 말로는 언제나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던 박성연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디바 야누스> 언론시사회 뒤 기자들과 만나 “어느 유력 후원자가 공연 후 나에게 봉투를 건넨 적이 있는데 단칼에 거절하고 대기실로 와버렸다. 공연에 해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잘했다”며 나를 칭찬하셨다. 선생님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무대에 서고 클럽을 운영하면서 언제나 속된 욕망을 경계하고 강단 있는 삶을 태도를 보여주셨다. 후배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랐다”라고 말했다.
대중음악과 재즈를 오가던 동시대 뮤지션들과 달리, 박성연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한길을 걸으며 재즈에 헌신했다. 활동 기간에 비하면 음반 수는 많지 않지만, 그만큼 성숙하고 재즈의 정석을 보여주는 작품을 남겼다. 1985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박성연과 재즈 앳 야누스(Jazz At The Janus)’와 1998년 2집 ‘디 아더 사이드 오브 박성연(The Other Side Of Park Sung Yeon)’, 2013년 3집 ‘박성연 위드 스트링스(Park Sung Yeon with Strings)’까지 총 3장의 정규 앨범이 그것이다.
2015년 건강 악화로 야누스 운영을 후배들에게 맡긴 뒤에도 그는 노래를 놓지 않았다. 2016년에는 야누스 출신 피아니스트 임인건의 앨범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Janus, The Reminiscence)’에 참여해 ‘별빛의 노래’, ‘바람이 부네요’, ‘길 없는 길’ 세 곡을 불렀다. 이후에도 휠체어를 타고 병원과 무대를 오가며 마지막까지 열정을 불태운 그는 2020년, 서울 은평구의 요양원에서 7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가 끝끝내 지켜낸 클럽 야누스는 재즈 뮤지션 말로와 작사가 이주엽이 이어받아 지난 9월 광화문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바람이 부네요. 춥진 않은가요. 밤 깊어 문득 그대 얼굴이 떠올라….’ 삶의 무게와 깊이가 담긴 인생의 노래, 허스키하면서도 따뜻한 박성연의 목소리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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