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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P게임추천 세종~안성 고속도 교량 붕괴도 ‘인재’였다…“안전장치 미리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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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8-23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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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P게임추천 다리 상판 대들보 받친 ‘스크루잭’, 작업 편의 위해 제거전방 이동 한정된 중장비 ‘런처’ 후방 이동 승인도 문제
사상자가 10명 발생한 세종~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가 발주청·시공사·하청업체 등이 기본적인 안전 수칙조차 지키지 않아 발생한 명백한 인재로 드러났다. 다리 상판에 깔리는 구조물이 넘어지지 않도록 막는 ‘스크루잭’을 작업 편의를 위해 임의로 제거한 점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지난 2월 세종~안성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교량 붕괴사고 조사 결과, 발주청·시공사·하청업체가 총체적으로 수칙을 지키지 않아 이번 사고가 벌어졌다고 19일 밝혔다.
당시 사고는 거더(다리 상판에 깔리는 대들보)를 설치·인양하는 중장비인 런처가 뒤로 이동하다 거더를 넘어뜨리며 발생했다. 이로 인해 교량이 붕괴하며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해당 공사의 발주청은 한국도로공사이며, 시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다.
사조위는 거더가 넘어진 결정적 원인으로 전도 방지시설인 스크루잭이 작업 중 임의로 해체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도로공사의 매뉴얼에 따라 스크루잭은 거더를 설치한 후 가로보를 타설·양생하는 안정화 작업을 거친 다음 제거해야 한다. 조사 결과, 현장에선 작업 편의 등을 이유로 그에 앞서 스크루잭을 임의 제거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조위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으로 분석한 결과, 스크루잭 총 120개 중 72개가 거더를 안정화하기 전 해체됐으며, 전도 방지 와이어도 제거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검사·감독해야 할 주체인 시공사 현대엔지니어링은 하청업체인 장헌산업이 스크루잭을 임의 제거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방으로만 이동해야 하는 런처를 거더 설치 이후 후방 이동한 점도 사고 발생 원인으로 지목됐다. 해당 런처의 후방 이동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 인증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엔지니어링과 한국도로공사는 이 런처의 후방 이동 작업이 포함된 안전관리계획서를 수립·승인했다.
오홍섭 사조위원장(경상국립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은 “안전관리계획서상에는 런처의 후방 이동이 전방 이동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뤄진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기재돼 있다”며 “스크루잭을 사용하고 후방 이동 시 단계별 안전관리계획이 철저하게 수립돼 있었다면 (사고 없이) 작업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고는 제대로 된 안전계획 없이 후방 이동하던 런처가 스크루잭 없이 허술하게 놓여있던 거더를 넘어뜨리면서 발생했다.
오 위원장은 “붕괴 시나리오별 구조해석 결과, 런처 후방 이동 등 동일한 조건에서 스크루잭이 제거되지 않았을 경우 거더가 붕괴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스크루잭 제거가 붕괴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시공 현장의 관리·감독에서도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 시공계획에 제시된 런처 운전자와 사고 당일 작업일지상 운전자가 달랐고, 작업일지상 운전자마저 다른 크레인 조종을 위해 당시 현장을 이탈해 있었다. 또 사고 런처도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기술자가 조작했다.
사조위는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전도 방지시설의 해체 시기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발주청과 건설 사업 관리자의 관리·감독 의무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국토부는 전도 방지시설을 가로보 타설·양생 이후 건설 관리 기술인의 승인을 거쳐 해체하는 것으로 교량공사 표준시방서를 개정할 계획이다.
김태병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사조위 조사 결과와 특별점검 결과를 경찰, 관계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에 즉시 통보할 것”이라며 “각 행정청은 소관 법령에 따라 벌점·과태료 부과, 영업정지 처분을 검토하는 등 엄중히 조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를 주장해 온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성매매 피해 여성 사건을 직접 지원해 온 ‘현장의 변호사’라고 평가받는다. 여성계는 성매매를 주요 여성폭력에서 제외했던 윤석열 정부와 달리 피해자 관점에서 성매매 방지 제도를 추진할 것이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20일 원 후보자의 수임 내역을 보면 후보자는 변호사 시절 성매매 피해 여성을 다수 대리했다. 원 후보자는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 등에서 법률팀으로 활동하며 성매매 여성이 성 착취 구조의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국가 책임을 촉구해왔다.
대표적으로 원 후보자는 2018년 성매매 여성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대리했다. 원고 측은 2014년 경찰의 함정단속을 피하려다 숨진 20대 성매매 여성의 유족이었다. 사건 당시 남성 경찰 6명은 티켓다방에 전화해 성매수 남성인 척 성매매 여성을 요청했다. 이후 돈을 지불한 경찰은 여성이 씻기 위해 욕실에 들어간 사이 갑작스레 임의동행을 고지했다. 여성은 창문을 통해 나가려다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재판부는 “고인이 갑작스러운 단속을 당해 상당한 수치심과 공포심을 느껴 정상적 상황 판단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 우발적 사고에 대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며 경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성매매 여성을 알선 업체나 성매수자와 같이 피의자로 바라보는 경찰의 단속 관행을 지적하는 계기가 됐다. 2004년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피해자보호법 등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됐으나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자발적 행위자’로 보고 단속하거나 처벌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원 후보자가 법률 지원했던 사건들을 보면 선불금이나 고금리 대출 등을 미끼로 성매매 여성을 옭아매는 성 산업의 착취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원 후보자는 2020년 ‘성형대출’ 피해 여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대리했다. 성형대출이란 성형 수술을 미끼로 성매매 여성에게 접근해 고금리 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변제를 독촉하며 유흥업소나 성매매 업소를 알선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당시 원고이던 성매매 여성은 성형대출 일당의 제안을 받아 성형수술비 등 2700만원을 34.9% 고금리로 대출받았다. 일당은 대출금 변제를 위해 근무할 유흥업소를 소개했고, 원고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성형 수술 사실과 술집에서 일한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을 일삼았다. 원 후보자 등 원고 측 대리인은 대부업자와 대부중개업자, 성형외과 의료진 등이 성매매 알선업자와 공모하는 등 구조적으로 협업했고, 이 때문에 성형대출이라는 불법 행위가 하나의 연결된 과정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원 후보자는 2005년 ‘미아리텍사스’라고 불리는 서울 하월곡동 화재 참사 관련 소송도 맡았다. 당시 유족들과 생존자들은 성매매 여성을 강제로 가뒀던 업주와 이를 묵인했던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원 후보자는 당시 언론 인터뷰 등에서 “여성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불법 사안에 대한 국가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다”고 말했다.
원 후보자가 성매매 여성을 대리한 관점은 그간 성매매 여성이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면 행위자로 처벌해 온 기존의 법리와는 차별화된다. 원 후보자는 지난 18일 청문회 준비 첫 출근 당시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성매매 같은 폭력 문제”를 언급했다. 반면 앞서 윤석열 정부에선 여가부가 5대 폭력 피해자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성매매는 폭력 유형으로 포함하지 않았다. 스토킹과 디지털성범죄 등 신종 성범죄 대응을 강화한다는 취지였지만 그 이면에는 성매매 여성이 성 산업 구조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고 보는 인식 때문이란 지적이 있었다.
신지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윤석열 정부에선 여성폭력에서 성매매가 빠지면서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정부 기조가 축소됐었다”며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분명한 관점을 가진 후보자가 여가부 장관이 된다면 적극적인 정책이 나오리란 기대감들이 있다”고 말했다.
9268개. 공장, 탄광, 지하시설 등 일본 제국주의(일제)가 한반도에 남긴 전쟁유적 숫자다. 문헌과 현지조사 등으로 확인된 곳 중 정부나 지자체 보고서가 발간된 곳은 321개. 일제가 36년간 남긴 상처 중, 약 3.46% 수준이다.
일제강점기 전쟁유적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과 연결되지만 지금껏 채 5%도 조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야만의 시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증언’ 덕분이었다.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한 ‘김학순’,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강제동원 책임을 물은 ‘이춘식’ 등의 증언은 광복 후 수십 년간 역사의 빈틈을 메웠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났다. 생생했던 ‘목소리’는 대부분 멈췄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며 생긴 틈으로 “강제동원도 일본군 ‘위안부’도 없었다. 증언은 거짓이다”는 주장이 파고들었다. 이제라도 멈춰버린 증언을 사실로 확인해야만 할 필요성이 커졌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발간한 구술록 속 강제동원 피해자 219명의 증언을 처음으로 전수 분석했다. 그들의 기억으로 지난 80년간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강제동원의 길’을 복원했다. 전국 역, 관공서, 학교, 여관 등에서 집결한 강제동원자들은 기차를 타고 여수역, 부산역 등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연락선으로 갈아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 주요역과 철도는 이들을 수송하는 핵심역할을 했다. 항구는 이들을 강제동원지로 실어나르는 기지였다.
219명의 기억을 쫓아 직접 따라가 본 길 위에는 참혹한 ‘폭력’의 역사가 있었다.
김희경은 덕수국민학교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4년 7월, 일본 후지코시강재주식회사로 강제동원됐다. 만 14세 때였다. 250명이 함께 동원됐는데 집결지는 ‘경기도청’(현 광화문 광장 남쪽)이었다. 이들은 ‘부민회관’(현 서울시의회)에서 일제를 홍보하는 영화를 한 편 봤다. 오후에는 ‘조선신궁’(현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이동해 참배한 뒤 ‘경성역’(서울역)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남대문을 내려보니까는 요즈음 시청광장에 사람 모이잖아요. 가족들이 그렇게 모여있어요. 아침에 아무것도 없이 나갔는데 도시락들을 싸가지고, 애들을 멕여 보낼라고. 서울역 가는 그 일대가 꽉 차서, 그걸 말로 표현을 못 해요.” 김희경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는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가 2008년 발간한 구술집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그 경험과 기억’에 나오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위원회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총 16권의 구술기록집을 남기고, 2015년 해체됐다. 정부가 발간한 책이지만 전권 열람이 가능한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구술집은 잊혔다. 그런데 이 책들에는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가 조각조각 실려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끌려간 ‘이동 경로’에 관한 것이다.
다시 김희경의 증언이다. 경성역에 도착한 그는 그날 저녁 8시, 기차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비 내리는 새벽이었다. “아마 새벽쯤 됐어, 비가 막 부슬부슬 오는데 250명이 춥고, 앉아가지구선 있는데, 한 아이 두 아이 울기 시작하더니 250명이 다 우는 거야.” 이날 가족품을 떠나 온 아이들이 함께 울었던 곳은 ‘부산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부산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부산항 제1부두에는 ‘관부 연락선’이 닿았다. “연락선이 단순히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연결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일본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면 곧바로 기차로 갈아타고 중국을 갈 수 있다는 의미의 ‘연락’ 입니다. 역이나 항구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거죠,”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당시 부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한반도, 중국을 연결하는 구조의 핵심은 ‘잔교역’이었다. 잔교역은 부두 위에 건설한 간이역을 말한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이 몇 걸음만 옮기면 곧바로 배에 오를 수 있다. 모든 환승과정이 역과 항구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극도로 효율적인 구조지만 뒤집어보면 완벽히 통제된 구조다.
그런데 김희경은 잔교역이 아닌 부산역에서 하차했다. 경부선에서 갈라져 나온 철도가 잔교역과 이어짐에도 부산역에서 하차했다면, 그 이유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일제는 김희경을 비롯한 250명의 아이를 역 밖으로 데리고 나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부산으로 이동해 곧바로 ‘관부 연락선’을 탔을 것이란 추측은 시작부터 깨졌다. 증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김희경의 기억이 부산에 이르러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만 14세 아이가 처음 가 본 도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억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219명의 증언자 가운데 비슷한 시기, 같은 장소를 거친 증언을 전부 찾았다. 그 결과, 1944년 5월 도쿄 누마즈공장으로 동원된 오일순, 1944년 10월 히로시마 조선소로 동원된 홍순의가 특정됐다. 같은 해 5월, 7월, 10월에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끌려간 이들의 기억에서 하나의 장면이 공통적으로 떠올랐다. 이들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인간 소독’이었다.
“자그마한 배를 타고 어느 도섬에 가니께네, 창고 같은 이런 데가 있었어요. 들어가보니까 새카만, 저 소독수라 소독수. 그 안으로 들어가라 하는 거예요”, “어딘지 들어갔는데 아 소독물 저저저, 모야 냄새 지독한 크레졸. 우유물 같이 허연 물에 넣고 소독시키는 거야, 몸을”, “약물로 소독을 했다고 사람을”.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시기 부산에 머물렀지만 마치 한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이들 증언이 맞다면 ‘강제동원의 길’에는 소독이라는 과정이 추가돼야 했다. 문제는 장소였다. 누구도 소독을 당한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소독하러 가는 길’을 묘사한 경우가 있었다. “부산에서 그 오륙도 지나설랑 조금 더 가면 조그만 섬이 있었어요, 그 섬에 들어가서 약물로 소독을 했다고 사람을”(김민경, 1944년 히로시마 기계제작소 동원), “부산 와가지고 지금은 모르겠는데, 어디 섬인데 부산에. 섬에 가서 우리를 소독을 시키는기라”(박군자, 1944년 도쿄 누마즈 공장 동원). 이들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설명은 그곳이 ‘섬’이라는 것이었다.
옛 부산역 근방, 자그마한 배로도 갈 수 있는 거리, 오륙도를 볼 수 있는 방향에 있는 ‘섬’. 1941년 일제가 제작한 부산 시가지도를 구해서 펼치고, 해당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을 찾았다. 딱 한 곳이 나왔다. 부산 ‘영도’다.
일제강점기 영도는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는 조선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현재 ‘깡깡이 마을’로도 유명한 해안가 일대에는 일본인 조선소가 밀집해 있었다. 1934년에는 최초의 도개교(다리 상판 한쪽을 올려 배가 지나갈 수 있게 한 다리)인 영도다리가 건설됐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만나는 대교동·남항동 일대와 ‘영도정’이라 불린 봉래동·청학동 일대는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다.
영도의 산업적 특성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영도에는 조선업을 지탱할 ‘노동력’이 필요했다. 영도에도 강제동원자가 있었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창고 ‘건물’이 있었다면 ‘창고가 있는 섬’이라는 소독 과정을 설명한 증언과 맞아떨어진다.
지난 1일, 영도에서 만난 박호석씨는 이렇게 말했다. “있었습니다.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해방 후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기도 했습니다. 그 건물을 허물고 1969년에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박씨가 지목한 곳은 부산 영도구 봉래동2가에 있는 ‘봉래 아파트’ 자리였다.
인근 주민들은 이곳을 ‘근로 보국대 기숙사’라고 불렀다. 근로 보국대는 일제가 시행한 강제동원의 한 갈래였다. 위치를 확정하기 위해 마지막 교차검증을 했다. 1952년 미군이 영도를 찍은 사진을 입수해 똑같은 구도로 영도를 촬영했다. 그리고 두 사진을 천천히 겹쳤다. ‘봉래 아파트’ 위로 또 하나의 건물이 겹쳐졌다. 이른바 ‘나가야식 숙소’라고 불리는 기다란 형태의 ‘목조’ 건물. 영도 ‘근로 보국대 기숙사’였다.
영도를 소독 장소로 특정하자 신빙성 없어 보였던 증언도 해석됐다. 홍순의는 “부산 건너 대마도라는 데가 있어, 목선 타고 건너가는데 거기가 얼마 안돼요. 인제 거기에 가서 목욕(소독)하는거요”라고 증언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직선거리는 약 50㎞ 정도인데 이른바 ‘쓰시마 해류’라고 불리는 강하고 빠른 해류가 흐른다. 나무배를 타고 가깝다고 느끼며 왕복했다고 보긴 어렵다. 반면, 부산 중구 일대에서 영도까지 최단거리는 불과 200m정도다. 영도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나무배가 영도와 부산을 이었다. 홍순의가 영도를 대마도로 착각했다고 하면, 증언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그럼에도 반드시 설명돼야 할 의문 한 가지가 남는다. 증언자들이 강제동원 된 시점은 1944년이다. 이때는 이미 영도다리가 있었다. 증언자들은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답은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이 내놨다.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너면 곧바로 일본인 거주지가 나옵니다. 조선인 징용자는 결코 이곳을 지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일제는 이들을 미개하고 불결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실제로 일제는 조선인이 ‘전염병’을 퍼뜨릴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했다. 당시 조선총독부 관보, 신문 기사 등에는 “조선인은 불결하고 전염병의 온상”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됐고, 이를 근거로 일본인 전용 목욕탕·공원 등의 출입 제한이 이뤄졌다. 결국, 1940년대 관점에서 보면 조선인 강제동원자가 배를 타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위원회 조사관으로 소독 과정에 대한 구술을 받은 허광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소장은 피해자들의 증언 당시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증언을 듣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일본으로 도항하기 직전, 알몸으로 벗겨진 채 소독을 당했다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그 경험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는지 이미 6~70년이 지났음에도 증언자들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일본인도 소독을 받아야 연락선에 오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
영도에서 소독을 마친 이들은 다시 부산항 제1부두로 끌려 나왔다. 그제야 관부연락선을 탈 수 있었다. 덕수초 → 경기도청 → 조선신궁 → 경성역 → 부산역(현 부산 중앙동 교보생명빌딩) → 영도 근로 보국대(봉래 아파트) → 부산항 제1부두(구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 관부연락선 → 일본 시모노세키로 이어지는 강제동원 주요 경로 중 하나가 비로소 완성됐다. 이 길은 1944년 7월, 서울에서 동원된 김희경이 실제로 걸었던 길이다. 구술록에 기록된 1943~44년 서울 출신 강제동원자들도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동선을 밟았다. 답사 결과, 서울 시내 구간은 도보로 약 2시간, 부산역에서 영도 근로보국대까지는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직접 따라가 본 ‘강제동원의 길’은 몇 가지 분명한 의미를 드러냈다. 우선, 도주를 막으면서 목적지까지 신속히 수송하기 위한 최적 경로였다. 예를 들어 집결지로 이용된 여관, 역, 항구는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있었다.
수송 수단으로 사용된 ‘철도’는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에서 관할 하며 감시와 통제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였다. 철도는 항구와 함께 ‘일제가 한반도를 근대화했다’는 증거로도 활용된다. 그러나 이 철도 위에서 당시 강제동원자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했다. 김명환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식으로 탈출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42~1945년까지 홋카이도탄광기선주식회사가 노무자 송출 현황을 기록한 ‘부산왕복’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1944년 한 해, 경성역에서 부산역으로 이동하던 강제동원자의 탈출률이 42%에 달했다.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갔다면 설명되지 않는 수치다.
이동 과정의 처우 역시 민족 차별적 성격을 드러낸다. 기차로 이동하면서 “객실에 앉아서 갔다”는 증언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인제 어디다가 싣느냐. 짐차여 사람타는 차에는 안 태우고, 소새끼 태우는 곳간이여. 튀지 못하게 할라고, 그거는 인간 타는 데가 아니에요.” 만 15세에 강제동원된 권석순은 기차 안 풍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물칸으로 수송한 이들을 소독까지해서 배애 태우는 과정을 종합하면, 일제가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자을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드러난다.
경향신문이 분석한 219명 중 176명은 김희경처럼 자신이 끌려갔던 이동과정을 일부라도 구술했다. 이들이 증언한 경로는 크게 평양/서울/춘천/서산/부여/전주 → 대전역 → 부산역 → 부산항 제1부두 → 관부연락선 → 일본 시모노세키, 익산/군산/장성/순천/순창/고흥 → 여수항 → 관려연락선 → 일본 시모노세키, 목포 유달 국민학교 → 목포 선창 → 소안도/추자도 → 제주도/우도 강제동원 등이다. 독특한 점은 관려연락선이 있었음에도 전라도 지역에서 부산으로 이동해 일본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조건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부산에서 출발해 일본으로 가는 정기항로가 경제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도 “1944년 후반이면 이미 해안선이 봉쇄돼 이동 중 배가 격침될 가능성이 컸다는 점 역시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제동원자들의 이동 경로, 증언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많다. 그럼에도 이를 활용한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었어요. 증언을 정리해 후속 연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했지만 그럴 시간도 예산도 없이 위원회가 해체됐습니다.” 위원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정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증언’을 확인해 객관적 역사로 남기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 광복 후 8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정확히 몇 명이 끌려가서 몇 명이 돌아오지 못했는지조차 모른다.
미국프로축구(MLS) 로스앤젤레스FC(LAFC)가 손흥민(33) 선수를 영입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큰 상업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21일 외신을 보면 존 소링턴 LAFC 공동 회장 겸 단장은 영국 토크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손흥민의 유니폼은 한주간 전 세계 모든 종목에 걸쳐 가장 많이 판매됐다”며 “세계 어떤 스포츠 선수보다 많은 유니폼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LAFC가 손흥민의 전 소속팀인 영국 토트넘에 지불한 것으로 알려진 이적료는 MLS 역대 최고 이적료인 2650만달러(약 368억원)다.
스튜디오 경향은 ‘윤지원의 머니터링’에서 축구 산업 전문가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를 인터뷰했다. 미국 LAFC가 손흥민을 영입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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