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내시라고 얕보지 마라’…나라 위해 목숨 바친 ‘환관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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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5-08-18 11:17본문
이 화재로 ‘성북동 별서’의 전체 영역 중에 1953년에 신축된 송석정의 일부(3분의 1)가 파괴되었다.
‘성북동 별서’가 어떤 유산일까. 1992년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으로 재분류된 유산이다.
사적 지정 당시 이 별서의 주인공은 ‘환관’이 아니었다.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의친왕 이강(1877~1955)의 별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심각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이조판서 심상응’이 사료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문인 내시’의 별장
명승 지위가 졸지에 박탈될 운명에 놓였다. 그러나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성락원이 고종(1863~1907)의 호종 내관인 황윤명(1848~?)의 별서(별장)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내시’ 황윤명은 왕실, 그 중 중궁전에 속한 승전색(承傳色·왕 및 왕비의 명을 전달하는 내시 가운데 최고위직)이었다. 명례궁 대차지(종1품)를 역임했다.
명례궁은 중궁전에 속해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그 업무를 총괄한 핵심인물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황윤명은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로 칭송받은 ‘문인 내시’였다. ‘육교시사’(1870년대 후반 위항 문인의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황윤명의 글씨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근묵>에 실려있고, 역대서화가의 평전인 <근역사화징>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황윤명은 중국과 조선의 명적을 모아 <난운관법첩> 3책을 목판으로 간행했다. 내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문집(<춘파유고>·1983)이 간행됐다. 황윤명은 공립학교인 삼산의숙까지 설립한 인물이다.
■명성황후 피란지
‘성락원’은 어떻게 내관 황윤명의 별서로 특정됐는가. 성락원의 영벽지 서측 바위에 새겨진 시가 결정적인 증거다.
이 시가 황윤명의 문집인 <춘파유고(春坡遺稿)>에 수록된 시문과 정확히 일치했다.
“온 시냇물 모아 흐르지 못하도록 막고서(百川會不流) 연못 만들어 푸른 난간 둘렀어라(爲沼碧欄頭)…”
중국 고사에 출전이 없는 고유 창작시니, 영벽지의 시는 황윤명의 작품이 확실한 것이다.(이원호 국립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
‘명성황후의 피란’은 팩트인가. 명성황후(1851~1895)는 1885년 12월21일 황윤명 등 3명에게 ‘일편단충(一片丹忠)’이라는 유묵을 써서 하나씩 나눠준 바 있다. 그런데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한 ‘일편단충’에 ‘황후의 황윤명 별서 피란 사실’이 기록돼있다.
“(갑신정변 발발) 다음 날…액례(내시부 소속 하급관리) 5~6명이 어가를 호위해 혜화문으로 나가 성북동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쌍류동으로 따라갔다…태후, 왕비, 세자께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따라 ‘명승 성락원’은 ‘명승 성북동 별서’로 명칭만 바꾸고 문화유산의 지위를 유지했다.
■내시계의 악인
내시가 어떤 대우를 받았던가. ‘기능을 잃은 존재’로 치부되어 온갖 손가락질을 받고 희화화되었다.
또 군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음모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내시=비인류’로 치부됐다.
“내시는 더럽고 흉측하니 인류가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을 이루고 산다. 아내가 혹 다른 남자와 접촉이 있을 때 유부녀의 잘못으로 죄를 주니 어찌 천리와 인정에 합당한 것인가….”(<송와잡기>)
물론 내시 중에는 악인이 분명 있었다. 대표주자가 고려 의종(1146~1170) 시대 환관인 정함이다. 정함은 의종의 유모를 아내로 삼는 등 의종의 최측근임을 과시했다.
그는 내시로는 처음으로 내전승반(정 7품)의 벼슬을 받았고, 임금이 하사한 서대(1품 이상 고관이 차는 무소 뿔 허리띠)를 차고 다녔다. 또 대궐의 동남쪽 30보 안에 200칸이 넘는 저택에서 호화생활을 즐겼다. <고려사>는 “우뚝 솟은 저택의 누각은 마치 궁궐 같았다”면서 “이처럼 법을 어지럽힌 환관은 듣도 보고 못했다”고 탄식했다. 정함은 문신 김존중(?~1156) 등과 결탁해서 매관매직을 일삼고 아부하는 자를 등용했다.
1156년(의종 10) 등창을 앓고 누운 정함을 문병하는 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국권이 환관에게 돌아갔구나!”(<고려사절요> 1156년조)라고 수근댔다. <고려사>의 사관은 “환관 정함 등의 농단이 결국 정중부(1106~1179)의 무신란(1170)을 초래했다”고 꼬집었다.(<고려사절요> 1157년조)
■‘내시 명필’
그러나 정함 같은 내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황윤명처럼 글씨도 잘 쓰고 학식이 뛰어난 내시도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내시부에 소속된 내시(환관)들은 <논어>·<맹자> 등 사서와, <소학>, <삼강행실>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내시명필’ 이봉정(생몰년 미상)이다. 이봉정이 모신 선조(1567~1608)는 ‘임진왜란을 초래한 암군(暗君)’이라는 혹평에 시달리지만 ‘서예’에서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는 군주다.
그런데 이봉정은 선조의 붓과 벼루를 받들다가 임금의 필법까지 모방했다.
영의정 이준경(1499~1572)이 “내시인 네가 감히 어필(임금의 서법)을 모방하는가…고치지 않으면 자칫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 꾸짖었다. 깜짝 놀란 이봉정이 서법을 송설체(원나라 명필 조맹부의 필체)로 바꾸었다. 선조도 이봉정의 바뀐 필법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공사견문록>)
선조는 임진왜란 중에 직접 지은 어제시를 이봉정에게 내리기도 했다.
“…간곡히 이르노니 직무에 힘쓰고(丁寧寄語須勤職) 나의 말 저버리지 말고 실천하게.(莫負吾言更體哉)(<인조실록> 1648년 윤 3월17일)
이봉정이 선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가 또 있었다. 선조는 임진왜란 직후 의주 피란 당시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이봉정의 숨은 공을 밝혔다.
“과인이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는 문제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 시중 들던 이봉정이 ‘시세가 급하니 중국에 원병을 청해야 한다’고 적극 주선했다. 그래서 비변사에 명을 내려 의논하게 한 결과 의견이 합치됐다.”(1604년 3월23일)
이봉정은 광해군 연간에도 활약했다. 광해군이 “넌 선조 때는 매우 여위었는데, 지금은 살찌고 건강하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봉정이 답했다.
“모두가 전하(광해군)의 은혜 덕분입니다. 선조 때에는 너무도 부지런히 정사를 펼쳐서 저 같은 무리가 여위었지만 지금은 여유있게 일하니 이렇게 살이 찐 것입니다”고 대답했다.(태천잡기>)
얼핏 들으면 아부 같지만 곱씹어보면 ‘광해군, 당신은 부왕(선조)보다 정사에 게을리한다’는 날카로운 풍자였다.
■반학영(반하경)의 할복 순국
특히 필자의 심금을 울린 인물이 있다. 내시 반학영(이명 반하경·?~1910)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우국지사다.
전남 장성 출신인 반학영(반하경)은 1840년생으로 추정된다. 어려서 양자로 입양되어 경기 파주 교하리로 이주했다. 그는 철종-고종-순종 등 3대에 걸쳐 승전색을 역임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스스로 사퇴한 뒤 경기 파주에 은거했다. 그러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양숙부 홍택주를 찾아 “평생 임금의 은혜를 입고 살아온 내가 나라가 망했으나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결별을 고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파주 삽다리 장터에 이르러 “비록 내시의 신분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면서 대로변에서 할복으로 순국 했다. 반학영이 장터 게시판에 한 장의 유서를 걸었다.
“대대로 나라의 녹을 받는 신하였으니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기리오. 내가 배를 갈라 민영환(1861~1905)과 여러 충신과 함께 지하에서 27대 군왕을 섬길 것이니, 이천만 동포는 혈심(血心)으로 단결하여 충성을 본받으라.”
■궁문에 걸린 김순손의 머리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에게 죽음을 무릅쓴 충간을 서슴지않은 두 내시가 있었다. 환관 김순손(?~1504)과 김처선(?~1505)이다.
김순손은 연산군(1494~1506) 연간에 왕명을 전달하는 승전색으로 일해왔다. 그런데 연산군 즉위 후 1년 만에 사달이 일어났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의금부에 하옥하여 곤장 100대를 치고 지방 군대에 편입시키라”(<연산군일기> 1495년 6월29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때 연산군은 처벌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훗날 <연산군일기>가 산발적으로 밝힌 사건의 전모가 낯뜨거웠다.
연산군이 암말과 수말을 궁궐 안채(내정·內庭)까지 끌어들여 교미 장면을 구경하고 온갖 난잡한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 때는 부왕(성종)의 초상(장례식)이 끝나기도 전(1495년)이었다. 김순손은 이와같은 연산군의 난행에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연산군일기> 1496년 5월13일) 그 뿐이 아니었다.
김순손은 술에 취한 연산군이 선왕(성종)의 후궁을 간음하려 하자 “안됩니다”라고 말렸다.(<연산군일기> 1504년 3월12일)
김순손을 제주도로 쫓아낸 연산군은 “환관으로서 정치에 간여했고, 임금을 업신여긴 김순손을 제주도 현지에서 처형하라”(1496년 5월13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승정원과 3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승정원)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극형에 처할 죄를 지었다 해도 마땅히 서울로 압송해서 그 죄를 밝힌 뒤 처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반대했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서울로 압송하지 않고 굳이 ‘제주도 현지 처형’을 주장한 이유가 있다. 김순손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연산군의 난행’을 적나라하게 진술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의 뒤끝이 결국 작렬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의 피바람 속에서 제주에 안치되어 있던 김순손을 참형에 처했다.(1504년 3월30일) 연산군은 김순손의 머리를 단봉문(창덕궁의 문)에 두고 내시들에게 보인 뒤 내시부에 간직하게 했다.(4월13일)
■“김처선의 처(處)자도 쓰지 마!”
환관 김처선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정2품(판서급) 자헌대부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김처선의 운명은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급전직하한다. 연산군이 무오사화(1498)-갑자사화(1504)를 일으키면서 대대적인 살육에 나섰다. <연산군일기> 1505년 4월1일자 기사가 눈길을 끈다.
“연산군이 궁중에서 술에 몹시 취해서 임금을 꾸짖은 환관 김처선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임금을 꾸짖었다’는 그 내용은 무엇일까.
“김처선은 어둡고 음란한 연산군에게 매번 정성을 다해 간언했다. 연산군은 노여움을 속에 쌓아두고 있었다. 급기야 임금이 궁중에서 처용놀이를 했는데 음란함이 지나쳤다.”(<소문쇄록>)
1505년 4월1일이었다. 역시 거나한 술자리가 벌어졌고, 작심한 김처선이 독설을 퍼부었다.
“늙은 놈이 네 분 임금을 섬겼지만, 고금에 전하와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연산군이 크게 성을 내며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이 김처선의 갈빗대에 맞혔다. 그러나 김처선은 그치지 않았다.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연산군이 화살을 더 쏘아 땅에 넘어뜨리고, 그 다리를 끊고서 “일어나 다니라”고 명했다.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김처선)
연산군은 김처선의 혀를 자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 냈다. 김처선은 죽을 때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했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시체를 범에게 주면서 이성을 잃은 후속조치를 남발했다.(<연산군일기> 1505년 4월 4일)
우선 조정과 민간에서 ‘처(處)’ 자는 입밖에 내지도 말라는 명을 내렸다. 예컨대 그 해 과거시험 답안지에 ‘처(處)’ 자를 썼던 유생(권벌)의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 김처선의 집을 헐고, 연못을 파도록 했으며, 그의 죄명을 돌에 새겨 묻으라는 명까지 내렸다.
심지어 김처선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모두 개명하라는 명까지 내린다. 24절기 중 ‘처서(處暑)’를 ‘조서(徂暑)’로 고치기도 했다. 연산군은 ‘입은 화의 문(口是禍之門), 혀는 내 몸을 베는 칼(舌是斬身刀)’이라는 글귀를 나무패에 새겨 내시는 물론 관리들도 차고 다니도록 명했다.(1505년 1월29일)
■고려를 지킨 내시 방신우
고려 시대 내시 중 으뜸은 방신우(1267~1343)다. 원나라의 직접 통치를 받을 운명이던 고려를 구한 인물이다.
경북 상주 출신인 방신우는 충렬왕의 제1비인 제국대장공주(1259~1297)의 시중을 들기 위해 원나라로 갔다. 7명의 황제와 2명의 태후를 섬겼다. 그 덕에 온갖 금은보화와 함께 원나라 강남 지방의 땅 4000무(81만평)를 하사받았다.
충선왕(재위 1298, 1308~1313) 연간의 일이었다. 요양행성(원나라 행정 구역)의 우승상인 홍중희가 “충선왕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원나라 중서성에 무고하고 “충선왕을 소환하여 저(홍중희)와 대질시키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방신우는 황태후에게 “고려를 배반하고 도망온 홍중희가 거짓사실로 본국(고려)을 전복하려 한다”고 아뢰었다. 결국 홍중희는 무고죄로 곤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또 한번의 고비가 있었다.
삭방(북방)의 번왕(제후)인 팔려미사라는 인물이 무리를 이끌고 원나라에 귀순했다. 원나라 황실은 그들을 압록강 동쪽에 거주시키려고 하였다. 그때 방신우가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
“고려는 땅이 협소하고 산이 많아 농사나 목축업이 불가능합니다. 북방인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할 것이며, 동쪽민들을 동요시킬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원나라 황제가 “네 말이 옳다”고 여겨 중지시켰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일찍이 원나라가 고려에 행성(원나라 직할지)을 세우려 했다.
그러자 방신우가 황태후를 설득하여 그 계획을 취소시켰다.
■공민왕을 지킨 이강달·안도적
1363년(공민왕 12) 윤3월1일 흥왕사(개경 근처 사찰)에 머무르고 있던 공민왕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벌어졌다
이때 공민왕을 지키던 숙위(경호원)가 모두 달아났다. 반란의 무리가 침전에 들이닥치기 직전 환관 이강달이 왕을 업고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 이강달은 공민왕을 태후의 침실에 숨겼다.
그 순간 공민왕과 용모가 비슷한 환관 안도적이 침대 안에 들어가 누웠다. 반란군은 안도적을 공민왕으로 오인하고 죽였다. 그러나 공민왕의 무사와 함께 흥왕사 반란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강달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374년(공민왕 23) 9월 자제위 최만생·홍륜이 공민왕을 시해했을 때 이강달은 맨먼저 침전에 들어갔다. 이강달은 온 방이 피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강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밖으로 나와 “주상께서는 괜찮다”고 하고는 문을 걸어잠궜다.
왕의 죽음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이강달은 경복흥(?~1380·이인임(?~1388)·안사기(?~1375) 등을 불러 역적 토벌을 논의했다. 그 덕에 최만생과 홍륜 등은 체포되어 거열형에 처해졌다.
■“사대부가 너만 못하구나!”
내시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떠오른 실록 기사가 하나 있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1일자 기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피란길에 나서자)…명망 진신들이 각자 몸보신에 혈안이 되어…뿔뿔이 흩어졌다…서울~의주에 이르기까지 선조를 따르던 문·무관은 겨우 17명…나머지는 환관 수십명과 어의 허준(1539~1615), 마부, 하급관리 등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의주에 도착한 선조가 내관(내시)에게 말했다. “사대부가 너희들만도 못하구나.”
1910년 국권침탈 뒤 대로변에서 자결 순국한 내관 반학영 선생의 한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비록 내시의 몸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내가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국민의힘이 8·22 전당대회를 앞두고 12일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를 열었다. 연설회장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을 비판하며 ‘내란 세력과 단절’을 주장하는 후보를 향해 일부 지지자들이 “배신자”를 연호하고, 지지 후보 연설이 끝나자 단체로 자리를 떠나는 등 갈등이 격화되는 모습이었다.
첫 연설회에서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를 비판한 뒤 “배신자”라는 야유를 들었던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행사장은 소란에 휩싸였다. 김 후보는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조용히 해주십시오. 배신자 김근식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연설을 이어갔다.
당 대표 후보 연설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조 후보는 약 4분 동안 소란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사회자의 거듭된 진정 요청 후에야 연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국민과 당원을 배신한 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라며 “탄핵을 반대하고 ‘부정선거’와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몰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부 당원들이 욕설을 퍼붓는 등 현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후보자들은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로 갈라져 서로를 비난했다. 탄핵 찬성 측이 ‘개혁’을 내세우면 반대 측은 ‘내부 총질’을 문제 삼았다.
국민의힘은 첫 연설회에서 발생한 “배신자” 비방 사건 이후 참석자 신원 확인을 강화하고, 소란을 유발할 수 있는 응원 물품 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행사장 밖에서는 일반 당원이 참석 희망자에게 입장 띠를 나눠주거나 유튜버가 ‘PRESS(기자)’ 비표를 받아 자유롭게 이동하는 등 관리가 허술한 모습도 보였다.
한편 전한길씨는 국민의힘으로부터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는 행사장에 왔다가 인근 유엔기념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입장 제한을 대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파리 생제르맹(PSG)이 이강인(24)의 활약을 앞세워 창단 이후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 우승을 차지했다. 0-2로 끌려가던 절체절명의 순간, 이강인의 왼발 중거리 슛이 극적 반전의 신호탄이 됐다.
PSG는 14일 이탈리아 우디네의 스타디오 프리울리에서 열린 2025 UEFA 슈퍼컵에서 토트넘을 상대로 2-2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PSG와 유로파리그 우승팀인 토트넘이 맞붙은 이 경기에서 PSG는 1996년 첫 슈퍼컵 준우승 이후 29년 만에 처음으로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토트넘은 전반 39분 미키 판더펜의 선제골에 이어 후반 3분 크리스티안 로메로의 헤더골로 2-0 리드를 잡으며 우승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온 두 골 모두 PSG 수비진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든 완성도 높은 공격이었다.
위기에 몰린 PSG는 후반 23분 결정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워렌 자이르에메리를 빼고 이강인을 투입했다. 오른쪽 미드필더로 투입된 이강인은 즉시 공격 작업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팀의 공격 리듬을 살렸다.
결정적인 순간은 후반 40분에 찾아왔다. 페널티 아크 왼쪽에서 비티냐의 패스를 받은 이강인은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으로 골문 오른쪽 하단 구석을 정확히 겨냥했다. 토트넘 골키퍼 굴리엘모 비카리오가 손끝으로 건드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이강인은 한국인 최초로 UEFA 슈퍼컵에서 골을 기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한 골 차로 추격한 PSG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우스만 뎀벨레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받은 곤살루 하무스가 다이빙 헤더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하무스는 후반 32분 교체 투입된 지 불과 10여 분 만에 팀을 구해낸 영웅이 됐다.
경기는 규정에 따라 연장전 없이 바로 승부차기로 넘어갔다. PSG는 첫 번째 키커 비티냐가 실축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하무스, 뎀벨레, 이강인, 누누 멘데스가 모두 성공하며 안정감을 되찾았다. 반면 토트넘은 판더펜과 마티스 텔이 연달아 실축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강인은 네 번째 키커로 나서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며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번 우승으로 PSG는 프랑스 클럽 역사상 최초로 UEFA 슈퍼컵 정상에 올랐다. 지난 시즌 프랑스 리그앙, 챔피언스리그, 쿠프 드 프랑스(FA컵), 트로페 데 샹피옹(프랑스 슈퍼컵)을 석권하며 4관왕을 달성한 PSG는 새 시즌 첫 공식전부터 트로피를 추가하며 완벽한 출발을 알렸다.
이강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우승이다. 2008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슈퍼컵에 출전한 이후 17년 만에 한국 선수가 이 무대에 섰을 뿐만 아니라, 골과 승부차기 성공까지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지난 시즌 출전시간이 줄어든 이강인은 새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증명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주택자가 지방에 두 번째 집을 구입하면 세제 특례를 현재 인구 감소 지역에서 인구 감소 관심 지역까지 확대하고,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주택가액 제한도 대폭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세제 특례와 공공매입을 통해 지방 주택에 대한 추가 수요를 창출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사람이 한 채를 추가로 사더라도 1주택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역이 강릉, 속초, 익산, 경주, 통영 등 9개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세컨드홈’(두 번째 집) 세제 혜택이 적용되는 80개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1주택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집값 기준도 공시가격 4억원에서 9억원(시세 12억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구 부총리는 “비수도권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때에는 취득세도 한시적으로 중과 배제하고, 50%까지 감면하겠다”고 덧붙였다.
건설사가 신속히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예비타당성 기준 상향도 예고했다. 그는 “SOC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기준 금액을 26년 만에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하고, 평가 항목도 지역의 전략사업을 우대하도록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구 부총리는 “내년부터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지자체 포괄보조금 규모를 3조8000억원에서 10조원 이상으로 3배 가까이 확대한다”며 “이를 통해 지자체가 사업과 투자규모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지역 맞춤형 투자를 촉진하겠다”고도 했다.
구 부총리는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발전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 방식을 과감하게 바꾸도록 하겠다”며 “지역에 특화된 미래 전략산업에 대해 재정, 세제, 인력확보 등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날 구 부총리는 유류세 인하조치도 10월 말까지 연장한다고도 밝혔다. 구 부총리는 “최근 지정학적 요인 등으로 인해 국제유가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8월 말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조치와 경유·CNG 유가연동 보조금을 10월 말까지 연장해서 국민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드리겠다”고 했다.
1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식에서 국방부 의장병들이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6명의 영현을 대전현충원으로 봉송하고 있다. 봉환된 유공자는 문양목(건국훈장 독립장), 김덕윤(애국장), 김기주(애족장), 한응규(애족장), 임창모(애족장), 김재은(애족장) 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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