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매수종목 열 달 전 “도이치 주가조작 무혐의”…중앙지검 4년반 뭐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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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8-16 16:54본문
특검은 기존 검찰 수사팀과 달리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다. 2009년부터 3년간 진행된 김 여사와 미래에셋증권 직원 간 통화 녹취록에는 김 여사가 ‘계좌 관리자(블랙펄인베스트) 측에 40%에 이르는 고율의 수익금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등 주가조작을 인지한 정황이 담겼다. 이 녹취는 증권사 서버에 저장돼 있었는데 검찰 수사팀은 4년6개월이나 수사하면서 간과했다.
또 특검은 1차 주가조작 시기가 죄를 물을 수 없게 된 시점의 일이라고 해도 ‘김 여사가 1차 주포자로부터 받은 손실보전금 4700만원’은 주가조작을 인지한 정황으로 인정된다고 봤다.
특검이 중시한 또 다른 증거는 김 여사의 차명계좌다. 특검은 김 여사가 측근인 전 SBS 아나운서 김범수씨 명의의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차명으로 이용해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하고 수익을 거둔 것을 확인했다. 김씨는 김 여사의 코바나컨텐츠에서 2011년 사내이사로 일했다. 김 여사가 차명계좌를 이용한 시기와 겹친다. 이 증거도 기존 검찰 수사팀은 확보하지 않았다.
기존 검찰 수사팀의 책임론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기수사 명령이 내려질 때부터 예견됐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에게 무혐의 처분을 한 뒤 ‘봐주기 수사’ 논란이 거세졌다. 검찰은 김 여사를 단 한 번 불러 조사했는데, 그마저도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조사했다. “모른다” “기억 안 난다”는 김 여사 진술을 수긍해 그를 ‘일반투자자’라고 결론지었다. 주범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비롯해 핵심 인물 재조사도 하지 않았다. 지난 4월 서울고검이 재기수사를 결정하자 사실상 검찰이 기존 수사가 봐주기 특혜였다고 자인한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김 여사 구속으로 기존 검찰 수사팀을 향한 책임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다면 기존 수사팀 관계자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될 수 있다. 김건희특검법에는 ‘수사 대상 사건과 관련해 공무원 등이 직무를 유기하거나 직권을 남용하는 등 수사를 고의로 지연·은폐하거나 비호’했다면 수사할 수 있게 돼 있다.
참여연대는 “(김 여사가)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수사·기소권을 틀어쥔 검찰의 ‘검찰 가족’에 대한 특혜와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부실 수사로 김건희씨 관련 의혹을 은폐해온 검찰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소비재를 제조·판매하는 A기업에서 최근 벌어진 일입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업무 전반을 혁신하는 AX(AI 전환) 차원에서 사내 ‘생성형 AI 활용 공모전’을 열었다고 합니다.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의욕 충만한 한 직원이 중대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AI 응용 방안을 고민하다 영업비밀 일부를 챗GPT에 입력해 본 겁니다. AI 계정을 관리하는 사측에서 이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지만, 이미 입력한 정보는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챗GPT를 비롯한 대다수 생성형AI에 입력된 정보는 대체로 AI기업 측 서버에 저장되고, 해당 AI 모델의 학습에 쓰입니다.
A기업엔 ‘보안유지가 필요한 정보를 AI에 입력해선 안 된다’는 지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직원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측은 해당 직원을 징계하고 지침 안내를 강화했습니다.
■직장인 30% “민감 정보를 AI에 입력해 본 적 있다”
생성형 AI가 직장인들의 주요 업무 도구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서 보안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데이터 보호 전문기업인 ‘베리타스 테크놀로지’의 지난해 설문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약 32%가 고객·직원 정보와 재무 정보 등 민감한 정보를 AI에 입력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국내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인데요, 표본의 크기가 작지요. 해외의 대규모 설문 결과를 볼까요.
글로벌 디지털 기업 ‘탤러스 디지털’이 올해 미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입니다. 챗GPT(오픈AI), 제미나이(구글), 코파일럿(마이크로소프트) 등에 고객·직원 개인정보, 출시 전 제품정보, 회사 재무정보를 입력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7%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삼성전자도 A기업과 유사한 사고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2023년 반도체 부문 직원들이 소프트웨어 소스코드(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한 설계도) 오류를 확인하고 회의 내용을 요약하기 위해 챗GPT에 소스코드와 회의록을 입력한 겁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의 챗GPT사용을 금지했고, 사외에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사내 정보를 입력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공지했습니다.
AI를 통한 정보유출은 사실 기업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 3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 중 이렇게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나는 AI를 꽤 자주 사용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AI에 묻곤 한다. 챗GPT와 르챗(프랑스의 생성형 AI)을 주로 사용한다” 스웨덴 정부의 주요정보가 AI 기업에 흘러들어갔을 것이란 비판이 즉각 터져나왔습니다. 이후 스웨덴 총리실은 “민감 정보는 올리지 않는다”고 해명하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물론 AI기업들은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픈AI 측은 “우리는 AI 모델이 개인이 아닌 세상에 대해 학습하기를 바란다”면서 “개인정보나 민감정보 응답 생성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령 제가 챗GPT에 개인정보를 입력해 이 정보가 GPT모델 학습에 사용되더라도, 다른 이용자와의 대화에서 해당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보가 외부 서버에 흘러 들어가는 한 ‘유출 사고’ 가능성은 늘 존재합니다. 2023년 구글 딥마인드 등 연구진은 챗GPT에 ‘poem’이라는 단어를 무한 반복하라는 지시를 입력하는 방법(일종의 인젝션 공격)으로 GPT 학습 데이터를 대량 불러온 적이 있습니다. 이 데이터엔 누군가의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고 저작권이 있는 문학 작품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당신도 ‘섀도우 AI’를?
정보유출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외 대기업들은 보안이 강화된 AI를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입력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모델(챗GPT 엔터프라이즈·팀 버전 등)이나 자체 서버만을 활용하는 온프레미스 AI, 외부 전용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프라이빗 AI 등이 대표적이죠.
현대자동차는 지난 7월부터 현대오토에버를 통해 개발한 AI모델 ‘H-챗’을 사용 중인데요. 챗GPT4를 기반으로 현대차 그룹 자체 서버만을 이용하는 버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이버는 자사의 하이퍼클로바X와 외부의 프라이빗 AI 모델들을 함께 사용 중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사내용으로 개발한 AI ‘가우스’를 주로 사용해 왔는데요. 업무 특성에 따라 외부 모델 사용이 필요할 경우 유관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보안을 강화한 AI를 쓰더라도 우려가 말끔히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섀도우(은밀한) AI’ 때문입니다. 섀도우 AI란 기업 내에서 공식 승인을 받지 않은 AI를 임직원이 임의로 업무에 사용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일단 AI 보안 정책부터 제대로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합니다. 최대선 숭실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AI에 노출해선 안 되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에 관한 분류 체계를 만들고 이를 직원들에게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다수 기업·기관엔 이러한 AI 보안 체계가 없거나 있더라도 허술한 것이 현실입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지난해 11개국 3만명의 소비자와 직원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4분의 1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AI 정책이 없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최 교수는 즉시 실천할 수 있는 보안 강화 ‘팁’도 소개했는데요, 첫 번째는 AI ‘데이터 학습’ 옵션을 찾아 끄는 것입니다. 각자 입력한 정보가 해당 AI 모델의 학습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웹사이트 텍스트 등을 복사해 AI 입력창에 붙여넣을 때, 무슨 내용인지 반드시 한번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해커들이 몰래 숨겨놓은 ‘정보 유출 지시(프롬프트)’가 자신도 모르게 AI에 입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격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AI에 입력한 내용이 해커에게 모두 노출되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기업에는 AI 보안 정책이 있나요? 여러분이 사용하는 AI ‘데이터 학습’ 옵션은 비활성화돼 있나요? AI가 일상에 파고든 만큼 보안도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검찰청 폐지·중수청 신설자치경찰제 등 검경 개혁
국정기획위원회가 13일 개헌을 이재명 정부의 1호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검찰청 폐지와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 감사원 개혁 등도 정치 분야 과제로 포함됐다.
국정기획위는 이날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라는 국정 목표 아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1호 과제는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 개정’이다. 이해식 국정기획위 정치행정분과장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87년 체제’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만드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제헌절인 지난달 17일 페이스북에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 중심 개헌’의 대장정에 힘 있게 나서주실 것으로 기대한다”며 5·18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국민 기본권 강화, 자치분권 확대, 권력기관 개혁 등 개헌안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가장 먼저 보고된 정치 분야 국정과제는 검찰·경찰 개혁이었다. 이 분과장은 “그간 표적수사 등으로 권한을 남용해온 검찰청은 폐지하겠다”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법무부의 탈검찰화로 법무 행정을 정상화해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와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 등 경찰개혁 방안도 보고됐다.
검찰개혁은 국정기획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국정기획위는 출범 초반 검찰청 업무보고를 내용과 형식이 부실하다며 무기한 연기하고, “검찰의 허락을 받고 검찰개혁을 공약한 게 아니다”라면서 개혁 대상인 검찰과 신경전을 벌였다. 다만 이날 수사·기소권 분리가 담긴 구체적인 조직 개편 내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군에 대한 민주적·제도적 통제를 강화해 군의 정치적 개입을 방지하고,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의 계엄 권한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와 육·해·공군 참모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등을 공약했다. 또 감사원 인사위원회 심의 기능 강화, 감사위원회 의결사항 공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도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홍창남 국정기획위 사회2분과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독립성을 강화하고 보도와 편성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며 “미디어발전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가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미디어 조직 개편은 국정과제로 언급되지 않았다.
김씨 성을 가진 친구가 임신 소식과 함께 뱃속 아기의 태명을 알려줬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김OO이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가 ‘아차, 아니겠구나’하고 멈칫했다.
“네 남편 성이 뭐였더라?”
OO이의 이름은 답을 듣고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여성 지인이 자신의 아이 이름을 소개했을 때 그 지인의 성씨, 즉 엄마의 성을 나도 모르게 붙여서 불렀다가 제대로(?) 바로잡힌 적 말이다. 들어도 모를 친구 남친, 친구 남편의 성보다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친구의 성이 제멋대로 자석처럼 아이의 이름에 착 들러붙었다. 죄송하지만 사실 지금도 OO이 아버지의 성씨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의 성을 이어받느냐는 부계사회와 모계사회를 가른다. 성씨가 부계와 모계를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일단 엄마 성을 물려받는 게 당연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모계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은 ‘부성 우선주의’를 따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모성을 이어받거나 모성으로 변경할 수 있다. ‘가부장제’라는 말로 대표되듯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부계사회에서 만들어진 제도와 전통들로 짜여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이름을 듣고 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성을 물려주겠다는 여자친구와 싸웠다, 엄마 성을 따르게 하고 싶어 고민이다 등의 이야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단골 싸움 소재다. 부계 성씨, 즉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쪽과 모계를 따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쪽 모두 나름의 합리성을 내세운다.
부계사회 전통은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에프워드]에서는 성씨와 가문의 자원, 가정 내 영향력 등이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모계사회는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를 넘어 관습 중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것과 적용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상상’해보려는 시도다.
중국 윈난성 모쒀족 사회는 현존하는 모계사회 중 대표적인 곳이다. 모쒀족은 ‘여성의 핏줄을 따라 가족과 친족이 구성되는’ 모계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여성이 가장이고 여성이 낳은 아이는 아버지를 묻지 않고 여성의 자녀로 인정하는 ‘가모장’ 사회인 것이다.
모쒀족 사회는 여성의 성적 자유와 재생산권을 보장한다. 이른바 ‘방문혼 제도(주혼·Walking Marriage)’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성인식을 거친 여성은 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며, 이 공간에서 결혼 제도 없이도 원하는 남성과 자유로이 관계맺을 수 있다. 남성은 여성의 거처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이 되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양육하고 모계를 따라 집안의 재산과 전통을 물려준다. 아버지가 누군지 묻지 않기 때문에 모든 아이는 평등하게 자녀로 인정받는다. 남성은 자신의 친자녀에 어떠한 책임도 권리도 없으며, 친자녀가 아닌 누이의 자녀를 돌본다.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거나, 독자적인 가족을 꾸리거나, 남성 쪽 집에 들어가 살지 않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는 온전히 모계 혈족의 일원이 된다. 여아가 태어나는 것이 집안의 경사인 것이다. 집안의 경제권 또한 여성이 갖는다. 이러한 전통 덕택에 모쒀족은 흔히 ‘어머니의 나라’로 불린다.
싱가포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추 와이홍은 중국 윈난성 모쒀족과의 교류를 책 <어머니의 나라>(흐름출판, 2018)로 남겼다. 이 책에는 중국과 싱가포르의 부계 전통에 익숙한 저자가 외부인으로서 모쒀족 공동체를 보고 느낀 충격과 감탄이 잘 드러난다. 온 사방이 부계사회로 둘러싸인 와중에 모쒀족이 어떻게 모계 전통을 고수할 수 있었는지가 그의 주된 의문이었다.
추 와이홍은 모쒀족이 모계 가족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할머니부터 시작하는 3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선 집안의 여성으로부터 오직 딸 쪽의 자녀들에게 혈통이 이어진다는 대원칙이 존재한다. 1세대 할머니는 자신의 남자 형제들과 한 가족에 속한다. (출산한) 다른 자매들은 별도의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이어 자신이 출산한 자녀가 전부 그의 가족에 속함으로써 2세대가 형성된다. 3세대는 오직 딸 쪽 손주들로만 이뤄진다. 아들에게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생모의 가족, 즉 다른 가족에 포함된다.
모쒀족 가정에 남자가 없지는 않다. 할머니의 남자 형제, 엄마의 남자 형제가 남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부가 생모 쪽 가족으로 편입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누이에게 속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남성이라는 성별에는 세대와 가계를 구분하는 ‘핵‘으로서의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부계가 이어지는 방식과 정반대다.
이밖에도 문화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기원전이나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모계사회였던 공동체를 찾아냈다. 어떤 공동체를 모계사회라고 지목하는지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이러한 공동체들은 여성의 사회 활동과 상속, 재생산권, 경제적 영향력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쒀족을 비롯해 모계 소수민족 공동체의 사례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사회가 기반한 합리성을 살펴보는 일은 분명 흥미롭지만, 부족이나 민족 집단은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이로 인해 몇몇 소수민족 사례는 극히 드문 예외로 비칠 뿐, 국가나 전 세계처럼 더 큰 규모의 사회를 무대로 대안적 상상을 가능케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쒀족 사회가 보여준 ‘모계사회 나름의 합리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 민족보다 더 큰 규모의 인간 사회가 구석구석 모계사회 요소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현실에서는 답을 찾기 어렵지만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 즉 픽션을 통해 그 면면을 그려볼 수 있다.
모계사회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흔히 ‘성별 반전’, ‘미러링’, ‘SF’ 등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 세계관이 어떻게 모계 전통을 구축하게 됐는가, 그 설립 과정과 유지는 순탄했는가 등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장치를 동원한다. 또 단순히 누구의 성씨를 물려주는가, 집안 가장이 누가 되느냐에서 더 나아가 어떤 성별이 더 큰 사회·경제적 권력을 차지하는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어디까지 반전되는가 역시 상상의 재미를 자아낸다.
엄마 성 따르기에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엄마 성을 받는다고 해봤자 결국 외할아버지(남성)의 성이 아니냐’고 비아냥대곤 하지만, 성씨를 물려받아 가문을 이어갈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꽤나 큰 문제다. 외할아버지의 성이 아들이 아닌 딸을 통해 계승된다, 엄마의 성명에 있는 성씨가 대를 이어 보존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가문을 중시한 전근대 일본에서는 이 문제가 특히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이를 배경으로 한 가장 저명한 작품으로 일본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가 그린 <오오쿠(大奥)>를 꼽을 수 있다. <오오쿠>는 에도 막부 시기 최고 권력자인 쇼군이 사실 여성이었다고 설정한다. 이러한 성별 반전을 위해 남성만 걸리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 ‘적면포창’이 작중 장치로 쓰였다. 적면포창은 곰에게서 유래해 온 몸에 발진을 일으키는 병으로 묘사된다. <오오쿠>는 적면포창으로 인해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의 5분의 1까지 떨어지고, 쇼군가(家)에도 그 파장이 미치며 결국 여성이 쇼군과 그 후계자, 다이묘(영주), 가주가 되면서 벌어지는 가상 시대극이다.
실제 역사에서 오오쿠는 남성 쇼군의 모친과 정실·측실, 쇼군을 위한 여성이 모여 생활하는 금남의 구역이었으나 만화 <오오쿠>에서는 여성 쇼군을 위한 남성들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쇼군이 지명한 남성이 쇼군과 밤을 보낼 자격을 얻고 후계자의 생부 혹은 양부가 된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오오쿠>에서 초기 여성 쇼군의 존재는 측근만 아는 기밀로 부쳐졌으며 여성 쇼군은 남성의 이름, 남성의 복장으로만 나설 수 있었다. 그러다 남성 인구가 격감하는 것을 버틸 수 없게 되자 여성 지배와 여성 상속, 즉 모계로의 전환이 자리를 잡았다. 여성은 쇼군가뿐만 아니라 각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
이러한 모계 세계관의 합리성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잘 설명된다.
임신·출산을 직접 수행하는 여성은 자신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혈통으로 인식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여성의 주변인들도 그 여성이 직접 임신하고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계를 따르는 이상 생부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남성이 아이를 두고 ‘진짜 내 핏줄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탓에 여성의 순결과 정절을 중시하게 된 가부장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에 더해 <오오쿠> 세계에서 남성은 제아무리 칼을 찬 무사라고 하더라도 적면포창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약한 몸’으로 간주된다. 부계가 모계로 반전되는 <오오쿠> 세계관은 이렇듯 설득력을 확보한다.
모계사회를 상상할 때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란 장르는 여성주의 시각에서 상상한 유토피아를 그린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뒤바뀌는지, 성별 위계가 존재하는지,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남성이 겪는 일명 ‘미러링’이 있는지 등의 설정은 제각각이다.
대표적으로 샬럿 퍼킨스 길먼이 저술한 <허랜드>(궁리, 2020)는 절벽 위에 고립돼 2000년 동안 존속된 여성들만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 여인국(女人國)은 처음부터 여성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자연재해로 남성이 극소수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남성들이 모든 여성을 상대로 지배권을 가지려 하자, 여성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해 남성을 모조리 없앴다는 설정을 따른다. 유입도 유출도 없이 여성만 남은 이 곳에서 기적적으로 처녀생식(단성생식)이 성공하며 여아만이 태어난다. 모두가 한 어머니에게서 난 자매이고 혈족이기 때문에 성씨는 따로 없다.
여인국에 떨어진 미국인 남성 3명은 이곳이 마치 자신들을 위한 ‘하렘’일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남성이란 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에 여인국의 인간은 전부 여성이었고 여성이 모든 일을 했다. 남성성의 거울로서 여성성이 없으므로 ‘여자다운 여자’, ‘여성미’란 말 역시 성립하지 않았다. <허랜드>가 그리는 여인국은 미개하지도 더럽지도 질투로 가득차지도 않은, 그저 안정된 인간 사회다.
여인국에는 결혼과 가정, 가족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고 묘사된다. 가정의 역할은 친구와 동료, 사회가 대신한다. 아이는 사회 유지에 매우 중요하므로 모두가 공들여 키운다. 극중 화자인 밴은 미국인 남성의 시선으로 본 여인국 특유의 자매애와 모성애, 공동 양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성만 존재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보다 더 나을까? 대를 잇는 문제를 떠나 여성은 남성 없이 여성이자 인간 그 자체로 살 수 있을까?
<허랜드>는 이러한 상상에 대한 나름의 답이다. <허랜드>를 쓴 길먼은 20세기 미국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였고 이 작품이 처음 출판된 시점(1915년)은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시점(1920년)보다도 5년 앞선다. 그만큼 길먼에게 여인국이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자 세상 사람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여주고 싶은 한 가지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보다 본격적으로 부계→모계 전환을 꾀한 소설로 <이갈리아의 딸들>(황금가지, 2018)을 빼놓을 수 없다. 1977년 노르웨이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이갈리아라는 국가를 무대로 여성과 남성의 사회·경제·문화적 지위가 맞바뀐 사회를 촘촘히 묘사한다. 남성을 기본형으로 하는 영어의 ‘맨(man·남성)’과 ‘우먼(woman·여성)’을 전복해, 이갈리아 세계에선 ‘움(wom·여성)’이 기본형이고 남성은 ‘맨움(manwom)’이다.
이갈리아에서 임신은 족쇄가 아니라 재생산 능력으로 간주된다. 움이 신체적·성적 자유를 누리는 반면 맨움의 신체는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정절이 중시된다. 맨움은 자신의 성기를 감추기 위해 전용 속옷인 페호를 착용해야 한다. 조신하지 못하거나 방탕해서 아이의 아버지로 인정받지 못한, 즉 ‘부성보호’를 받지 못한 맨움들은 사회적으로 배척된다. 현실 가부장제 속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정반대로 그린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별 전환을 통해 가부장제를 풍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여성만의 나라, 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별임금격차, 성별 분업, 성차별과 같은 젠더 의제까지도 뒤집어 엎기 때문이다. 일부 ‘각성한’ 맨움에 의해 맨움해방운동이 전개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집요함마저 느껴진다.
이갈리아는 꽤 그럴듯한 내재적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이갈리아에서 맨움이 정절을 강요당하고 가계가 움에서 움으로만 전승되는 데에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위에 인용한 ‘아이를 갖는 특권’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현실의 부계사회가 나름의 논리로 체제 존속을 주장하고는 있으나, 그 논리는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적용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점을 <이갈리아의 딸들>은 보여준다.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모계사회의 우월성이 아니라 성차별의 우스꽝스러움 아니었을까.
실존하는 모계사회에서 더 나아가 모계사회를 설정한 픽션을 살펴보는 일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픽션은 현실이 존재할 때에만 픽션이 될 수 있다. 현실이 어떠하냐에 따라 무엇을 픽션으로 부를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판타지 소설 대가 어슐러 르 귄은 성별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한 행성의 이야기를 소설 <어둠의 왼손>(시공사, 2014)으로 썼다. 그는 이 작품 서문에서 SF를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읽어도 된다”고 제안했다. 또한 “훌륭한 소설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달라졌음을, 조금은 바뀌었음을 깨닫게 되리라”고 했다.
앞서 소개한 실제·가상 모계사회는 ‘모계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나’란 의문에 대한 반론으로서 나름의 합리성을 구축하고 있다. 적어도 그 세계관 내에서는 ‘말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읽고 난 다음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다. 그 합리성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합리성인가? 우리가 가상의 세계를 그럴듯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반대로 그 세계가 이상해 보였다면 왜 그럴까? 이러한 질문을 통해 픽션 속 모계사회는 현실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내가 낳고도 내 성씨를 물려주지 못하는 부계사회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픽션을 찾아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실존하는 혹은 가상의 모계사회는 인간 사회의 그 어떠한 제도도 필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앞으로 모계 전승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 균열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상상을 더해 본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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