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CS [에프워드] ④ 가모장 사회의 ‘후계자’들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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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8-15 21:31본문
“네 남편 성이 뭐였더라?”
OO이의 이름은 답을 듣고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여성 지인이 자신의 아이 이름을 소개했을 때 그 지인의 성씨, 즉 엄마의 성을 나도 모르게 붙여서 불렀다가 제대로(?) 바로잡힌 적 말이다. 들어도 모를 친구 남친, 친구 남편의 성보다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친구의 성이 제멋대로 자석처럼 아이의 이름에 착 들러붙었다. 죄송하지만 사실 지금도 OO이 아버지의 성씨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의 성을 이어받느냐는 부계사회와 모계사회를 가른다. 성씨가 부계와 모계를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일단 엄마 성을 물려받는 게 당연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모계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은 ‘부성 우선주의’를 따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모성을 이어받거나 모성으로 변경할 수 있다. ‘가부장제’라는 말로 대표되듯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부계사회에서 만들어진 제도와 전통들로 짜여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이름을 듣고 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성을 물려주겠다는 여자친구와 싸웠다, 엄마 성을 따르게 하고 싶어 고민이다 등의 이야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단골 싸움 소재다. 부계 성씨, 즉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쪽과 모계를 따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쪽 모두 나름의 합리성을 내세운다.
부계사회 전통은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에프워드]에서는 성씨와 가문의 자원, 가정 내 영향력 등이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모계사회는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를 넘어 관습 중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것과 적용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상상’해보려는 시도다.
중국 윈난성 모쒀족 사회는 현존하는 모계사회 중 대표적인 곳이다. 모쒀족은 ‘여성의 핏줄을 따라 가족과 친족이 구성되는’ 모계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여성이 가장이고 여성이 낳은 아이는 아버지를 묻지 않고 여성의 자녀로 인정하는 ‘가모장’ 사회인 것이다.
모쒀족 사회는 여성의 성적 자유와 재생산권을 보장한다. 이른바 ‘방문혼 제도(주혼·Walking Marriage)’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성인식을 거친 여성은 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며, 이 공간에서 결혼 제도 없이도 원하는 남성과 자유로이 관계맺을 수 있다. 남성은 여성의 거처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이 되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양육하고 모계를 따라 집안의 재산과 전통을 물려준다. 아버지가 누군지 묻지 않기 때문에 모든 아이는 평등하게 자녀로 인정받는다. 남성은 자신의 친자녀에 어떠한 책임도 권리도 없으며, 친자녀가 아닌 누이의 자녀를 돌본다.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거나, 독자적인 가족을 꾸리거나, 남성 쪽 집에 들어가 살지 않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는 온전히 모계 혈족의 일원이 된다. 여아가 태어나는 것이 집안의 경사인 것이다. 집안의 경제권 또한 여성이 갖는다. 이러한 전통 덕택에 모쒀족은 흔히 ‘어머니의 나라’로 불린다.
싱가포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추 와이홍은 중국 윈난성 모쒀족과의 교류를 책 <어머니의 나라>(흐름출판, 2018)로 남겼다. 이 책에는 중국과 싱가포르의 부계 전통에 익숙한 저자가 외부인으로서 모쒀족 공동체를 보고 느낀 충격과 감탄이 잘 드러난다. 온 사방이 부계사회로 둘러싸인 와중에 모쒀족이 어떻게 모계 전통을 고수할 수 있었는지가 그의 주된 의문이었다.
추 와이홍은 모쒀족이 모계 가족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할머니부터 시작하는 3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선 집안의 여성으로부터 오직 딸 쪽의 자녀들에게 혈통이 이어진다는 대원칙이 존재한다. 1세대 할머니는 자신의 남자 형제들과 한 가족에 속한다. (출산한) 다른 자매들은 별도의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이어 자신이 출산한 자녀가 전부 그의 가족에 속함으로써 2세대가 형성된다. 3세대는 오직 딸 쪽 손주들로만 이뤄진다. 아들에게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생모의 가족, 즉 다른 가족에 포함된다.
모쒀족 가정에 남자가 없지는 않다. 할머니의 남자 형제, 엄마의 남자 형제가 남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부가 생모 쪽 가족으로 편입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누이에게 속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남성이라는 성별에는 세대와 가계를 구분하는 ‘핵‘으로서의 기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부계가 이어지는 방식과 정반대다.
이밖에도 문화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기원전이나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모계사회였던 공동체를 찾아냈다. 어떤 공동체를 모계사회라고 지목하는지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이러한 공동체들은 여성의 사회 활동과 상속, 재생산권, 경제적 영향력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쒀족을 비롯해 모계 소수민족 공동체의 사례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사회가 기반한 합리성을 살펴보는 일은 분명 흥미롭지만, 부족이나 민족 집단은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이로 인해 몇몇 소수민족 사례는 극히 드문 예외로 비칠 뿐, 국가나 전 세계처럼 더 큰 규모의 사회를 무대로 대안적 상상을 가능케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쒀족 사회가 보여준 ‘모계사회 나름의 합리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 민족보다 더 큰 규모의 인간 사회가 구석구석 모계사회 요소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현실에서는 답을 찾기 어렵지만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 즉 픽션을 통해 그 면면을 그려볼 수 있다.
모계사회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흔히 ‘성별 반전’, ‘미러링’, ‘SF’ 등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 세계관이 어떻게 모계 전통을 구축하게 됐는가, 그 설립 과정과 유지는 순탄했는가 등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장치를 동원한다. 또 단순히 누구의 성씨를 물려주는가, 집안 가장이 누가 되느냐에서 더 나아가 어떤 성별이 더 큰 사회·경제적 권력을 차지하는가,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어디까지 반전되는가 역시 상상의 재미를 자아낸다.
엄마 성 따르기에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엄마 성을 받는다고 해봤자 결국 외할아버지(남성)의 성이 아니냐’고 비아냥대곤 하지만, 성씨를 물려받아 가문을 이어갈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꽤나 큰 문제다. 외할아버지의 성이 아들이 아닌 딸을 통해 계승된다, 엄마의 성명에 있는 성씨가 대를 이어 보존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가문을 중시한 전근대 일본에서는 이 문제가 특히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이를 배경으로 한 가장 저명한 작품으로 일본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가 그린 <오오쿠(大奥)>를 꼽을 수 있다. <오오쿠>는 에도 막부 시기 최고 권력자인 쇼군이 사실 여성이었다고 설정한다. 이러한 성별 반전을 위해 남성만 걸리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 ‘적면포창’이 작중 장치로 쓰였다. 적면포창은 곰에게서 유래해 온 몸에 발진을 일으키는 병으로 묘사된다. <오오쿠>는 적면포창으로 인해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의 5분의 1까지 떨어지고, 쇼군가(家)에도 그 파장이 미치며 결국 여성이 쇼군과 그 후계자, 다이묘(영주), 가주가 되면서 벌어지는 가상 시대극이다.
실제 역사에서 오오쿠는 남성 쇼군의 모친과 정실·측실, 쇼군을 위한 여성이 모여 생활하는 금남의 구역이었으나 만화 <오오쿠>에서는 여성 쇼군을 위한 남성들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쇼군이 지명한 남성이 쇼군과 밤을 보낼 자격을 얻고 후계자의 생부 혹은 양부가 된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오오쿠>에서 초기 여성 쇼군의 존재는 측근만 아는 기밀로 부쳐졌으며 여성 쇼군은 남성의 이름, 남성의 복장으로만 나설 수 있었다. 그러다 남성 인구가 격감하는 것을 버틸 수 없게 되자 여성 지배와 여성 상속, 즉 모계로의 전환이 자리를 잡았다. 여성은 쇼군가뿐만 아니라 각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
이러한 모계 세계관의 합리성은 다음과 같은 대사로 잘 설명된다.
임신·출산을 직접 수행하는 여성은 자신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혈통으로 인식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여성의 주변인들도 그 여성이 직접 임신하고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계를 따르는 이상 생부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남성이 아이를 두고 ‘진짜 내 핏줄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탓에 여성의 순결과 정절을 중시하게 된 가부장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에 더해 <오오쿠> 세계에서 남성은 제아무리 칼을 찬 무사라고 하더라도 적면포창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약한 몸’으로 간주된다. 부계가 모계로 반전되는 <오오쿠> 세계관은 이렇듯 설득력을 확보한다.
모계사회를 상상할 때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란 장르는 여성주의 시각에서 상상한 유토피아를 그린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뒤바뀌는지, 성별 위계가 존재하는지,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남성이 겪는 일명 ‘미러링’이 있는지 등의 설정은 제각각이다.
대표적으로 샬럿 퍼킨스 길먼이 저술한 <허랜드>(궁리, 2020)는 절벽 위에 고립돼 2000년 동안 존속된 여성들만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 여인국(女人國)은 처음부터 여성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자연재해로 남성이 극소수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남성들이 모든 여성을 상대로 지배권을 가지려 하자, 여성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해 남성을 모조리 없앴다는 설정을 따른다. 유입도 유출도 없이 여성만 남은 이 곳에서 기적적으로 처녀생식(단성생식)이 성공하며 여아만이 태어난다. 모두가 한 어머니에게서 난 자매이고 혈족이기 때문에 성씨는 따로 없다.
여인국에 떨어진 미국인 남성 3명은 이곳이 마치 자신들을 위한 ‘하렘’일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남성이란 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에 여인국의 인간은 전부 여성이었고 여성이 모든 일을 했다. 남성성의 거울로서 여성성이 없으므로 ‘여자다운 여자’, ‘여성미’란 말 역시 성립하지 않았다. <허랜드>가 그리는 여인국은 미개하지도 더럽지도 질투로 가득차지도 않은, 그저 안정된 인간 사회다.
여인국에는 결혼과 가정, 가족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고 묘사된다. 가정의 역할은 친구와 동료, 사회가 대신한다. 아이는 사회 유지에 매우 중요하므로 모두가 공들여 키운다. 극중 화자인 밴은 미국인 남성의 시선으로 본 여인국 특유의 자매애와 모성애, 공동 양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성만 존재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보다 더 나을까? 대를 잇는 문제를 떠나 여성은 남성 없이 여성이자 인간 그 자체로 살 수 있을까?
<허랜드>는 이러한 상상에 대한 나름의 답이다. <허랜드>를 쓴 길먼은 20세기 미국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였고 이 작품이 처음 출판된 시점(1915년)은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시점(1920년)보다도 5년 앞선다. 그만큼 길먼에게 여인국이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자 세상 사람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여주고 싶은 한 가지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보다 본격적으로 부계→모계 전환을 꾀한 소설로 <이갈리아의 딸들>(황금가지, 2018)을 빼놓을 수 없다. 1977년 노르웨이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이갈리아라는 국가를 무대로 여성과 남성의 사회·경제·문화적 지위가 맞바뀐 사회를 촘촘히 묘사한다. 남성을 기본형으로 하는 영어의 ‘맨(man·남성)’과 ‘우먼(woman·여성)’을 전복해, 이갈리아 세계에선 ‘움(wom·여성)’이 기본형이고 남성은 ‘맨움(manwom)’이다.
이갈리아에서 임신은 족쇄가 아니라 재생산 능력으로 간주된다. 움이 신체적·성적 자유를 누리는 반면 맨움의 신체는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정절이 중시된다. 맨움은 자신의 성기를 감추기 위해 전용 속옷인 페호를 착용해야 한다. 조신하지 못하거나 방탕해서 아이의 아버지로 인정받지 못한, 즉 ‘부성보호’를 받지 못한 맨움들은 사회적으로 배척된다. 현실 가부장제 속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정반대로 그린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별 전환을 통해 가부장제를 풍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여성만의 나라, 여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별임금격차, 성별 분업, 성차별과 같은 젠더 의제까지도 뒤집어 엎기 때문이다. 일부 ‘각성한’ 맨움에 의해 맨움해방운동이 전개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집요함마저 느껴진다.
이갈리아는 꽤 그럴듯한 내재적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이갈리아에서 맨움이 정절을 강요당하고 가계가 움에서 움으로만 전승되는 데에는 다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위에 인용한 ‘아이를 갖는 특권’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현실의 부계사회가 나름의 논리로 체제 존속을 주장하고는 있으나, 그 논리는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적용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점을 <이갈리아의 딸들>은 보여준다.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모계사회의 우월성이 아니라 성차별의 우스꽝스러움 아니었을까.
실존하는 모계사회에서 더 나아가 모계사회를 설정한 픽션을 살펴보는 일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픽션은 현실이 존재할 때에만 픽션이 될 수 있다. 현실이 어떠하냐에 따라 무엇을 픽션으로 부를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판타지 소설 대가 어슐러 르 귄은 성별이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한 행성의 이야기를 소설 <어둠의 왼손>(시공사, 2014)으로 썼다. 그는 이 작품 서문에서 SF를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읽어도 된다”고 제안했다. 또한 “훌륭한 소설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달라졌음을, 조금은 바뀌었음을 깨닫게 되리라”고 했다.
앞서 소개한 실제·가상 모계사회는 ‘모계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나’란 의문에 대한 반론으로서 나름의 합리성을 구축하고 있다. 적어도 그 세계관 내에서는 ‘말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읽고 난 다음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다. 그 합리성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합리성인가? 우리가 가상의 세계를 그럴듯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반대로 그 세계가 이상해 보였다면 왜 그럴까? 이러한 질문을 통해 픽션 속 모계사회는 현실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내가 낳고도 내 성씨를 물려주지 못하는 부계사회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픽션을 찾아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실존하는 혹은 가상의 모계사회는 인간 사회의 그 어떠한 제도도 필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앞으로 모계 전승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 균열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상상을 더해 본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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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공장소에서 브래지어(브라)를 벗은 적이 있다.” 때는 2012년 7월, 장소는 일본 후쿠오카였다. 당시 일본은 폭염·폭우가 한창이었다. 여행 후 숙소에 돌아와 현지 뉴스를 틀면 돼지가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이 나왔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고, 푹푹 쪘다. 거리 인파에 섞여 땀을 뻘뻘 흘리며 지역 축제(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행진을 구경하던 도중 숨이 막히며 ‘아 정말 쪄죽겠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입고 있던 와이어 브라가 몸을 조여왔다.
일제 패망 1년 전에 도쿄에서 출생했으나, 나 자신을 해방둥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삶 가운데 3분의 2인 60년 가까운 시간을 외국 땅에서 살았다. 이런 내 삶의 역정 때문에 개인적인 체험 공간에 채워진 기억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그것과 많이 다를 것이고 이에 따라 미래에 대한 기대 지평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제와 80년 전 해방 전후사를 직접 경험한 우리의 부모 세대는 지금 거의 사망했고, 우리 세대는 해방과 함께 시작된 분단시대에 성장했다는 특이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가난한 소년기를 보내고, 정치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군사독재를 겪으며 청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압축된 경제성장의 주된 동력이었다는 강한 자부심도 지닌 세대다.
외국 땅에서 간혹 옛 친구를 만나면 대개가 가난과 독재 시절을 이야기하지만, 오늘의 처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하고 있거나 더 나아가 한국인으로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임원이나 대학교수를 지내고 나름대로 여유가 있는 만년을 보내고 있는 이 친구들 중에는 젊은 날 데모를 주동하고 쫓겨 다녔던 이력의 소지자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 먹을수록 정치적으로 보수화된다는 현상을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는 격언이 있다. “20세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그는 심장이 없는 자이고 40세가 되어도 그렇다면 그는 이성이 없는 자다”라는-확실하지는 않지만-처칠이 남겼다는 경고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한 개인이 늙어갈수록 보수화된다는 의미보다는 개인이 속한 세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나 종교적인 가치관의 일반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란 견해도 있다. 1981년부터 장기간에 걸쳐 많은 나라의 가치관 변화를 추적하는 ‘세계가치관조사’(WVS)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한 세대가 거의 동시적으로 지구적 범위에서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를 보여주었던 ‘68혁명’을 나는 그 진원지의 하나였던 프랑크푸르트에서 경험했다. 이보다 몇년 앞서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운동을 국내에서 경험했다. 하지만 이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서베를린, 프랑스 파리, 미국 버클리는 물론 일본 등지에서 전후 냉전체제 안에 굳어진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며 베트남 전쟁으로 상징된 제3세계의 반제국주의·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하고 노동·교육·인권·여성해방 등을 문제로 삼은, 폭넓은 저항은 아니었다.
한국과 유럽, 저항 운동 양상 달라
허버트 마르쿠제가 <일차원적인 인간>에서 제기한 “거대한 거부는 해방의 첫 번째 계명이다”라는 명제는 당시 젊음과 지성이 열광했던 시대정신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진리는 완결된 체제 안에서 안주하는 적당한 화해가 아니라 모순과 불완전성에 기인한 긴장과 심한 불화도 감내하는 비판적 인식과 적극적인 실천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항과 변혁운동이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상황 안에서 당시 상대적으로 낙후했던 스페인·포르투갈과 그리스의 독재정권도 1970년대 중반에는 무너졌고 반제국주의·민족해방 운동의 상징이었던 베트남 전쟁은 1975년 4월30일 사이공의 함락으로 일단락됐다.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에서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한 칠레의 사회주의 아옌데 정권의 탄생에 극도로 위기를 느낀 미국 닉슨 행정부는 ‘콘도르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피노체트의 무자비한 유혈 쿠데타를 통해 친미 반공 정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1973년 9월11일 반란군이 아옌데의 집무실인 ‘라 모네다’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포격을 가하는 와중에 라디오 전파를 탔던 강렬하고 비장한 그의 정치적인 고별사는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로 끝났다.
이런 국제적 환경의 변화와 함께 한반도 안팎의 정세도 급변했다. 1972년 2월 닉슨의 중국 방문에 이은 미·중 국교 정상화로 행한 발 빠른 움직임 속에서 한반도에도 ‘7·4 남북공동성명’이라는 화해의 훈풍이 불었으나 이는 유신체제의 시작을 알린 서막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의 엄청난 희생 위에 1987년 6월항쟁은 독재체제를 드디어 무너뜨렸다. 68혁명이 세계적인 범위에서 동시다발적이었지만 인명 피해와 손실의 측면에서 보자면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 투쟁은 정말 큰 희생을 치렀다.
물론 역사적인 배경, 정치체제와 사회·문화적인 조건이 다르기에 한국·유럽·남미에서 벌어진 저항운동의 양상은 다르게 나타났다. 유럽의 저항운동은 물리적 강제력 대신 이탈리아 공산당 창건자의 한 사람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강조했던, 시민사회의 가족·교육·종교·언론 등 헤게모니 공간을 선점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택했다. 독일 학생운동 지도자 중 한 명인 루디 두치케는 이를 ‘제도 속으로의 긴 장정’이라고 불렀다.
이와 달리 쿠바 혁명의 승리를 이미 경험했던 중남미(니카라과·과테말라·콜롬비아·페루·엘살바도르)에서는 미국이 지원하는 부패한 정권을 타도하려는 무장 게릴라가 투쟁의 주역이 됐다. 본디 아르헨티나 출신 의사였지만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투쟁을 이끌었던 체 게바라의 국제주의와 인간주의를 바탕 삼은 저항의 미학도 큰 울림을 주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긴 서문이 실린, 사후에 출간된 <볼리비아 일기>에서 그는 “나는 단지 한 몽상가는 아니다. 나는 꿈을 살리는 한 몽상가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 그의 게릴라 투쟁 방식을 모험주의라고 비판한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소련 간 이념 논쟁과 궤를 같이했다. 중국은 소련을 수정주의로 공격하고 소련은 중국의 맹동주의를 비판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열병을 앓고 난 중국이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의 주도 아래 ‘4개의 현대화’를 추진했고, 그동안 ‘발전된 사회주의’를 내세웠던 소련 역시 1980년대 중반부터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는 개혁과 개방 정책을 택했다.
지금 우린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이는 두 사회주의 대국의 역사적인 전환이었지만, 중요한 차이는 바로 정치와 경제의 연동 방식에 있었다. 시장경제적 요소를 허용했지만 공산당이 정치력의 고삐를 계속 틀어쥐었던 중국과 달리 소련에서는 개혁과 보수 간 권력 갈등이 야기한 정치적 혼란은 경제 생활에 극심한 혼란을 낳았고 인민들도 결국 개혁에 등을 돌리게 됐다. 중국도 비슷한 조건 속에서 ‘톈안먼 사태’를 겪었지만 조기에 당은 이를 무력으로 강경하게 진압했다.
소련의 혼란과 해체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독일이었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듬해 10월3일 마침내 숙원인 통일을 성취했다. “베를린, 이제 너 기뻐하라!”라는 당시 서베를린 시장 발터 몸퍼의 외침에 환호하는 군중을 보면서 내가 지녔던 감정은 한마디로 부러움과 아쉬움이었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인이 무척 부러웠고, 자나 깨나 통일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섞인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이 독일인의 행운은 어느 날 밤도둑처럼 찾아온 것은 결코 아니었고 화해와 평화라는 긴 과정의 결과였다. 장벽이 무너진 바로 그다음 날, 1969년부터 ‘동방정책’을 펼쳤던 빌리 브란트는 “원래 하나였던 것이 이제 함께 성장한다”는 한마디로 그의 통일철학을 요약했다.
올해로 독일 통일은 35주년을 맞는다. 한 세대를 지나도록 같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옛 동독 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마음의 장벽은 극우 세력을 키우고 있다. 독일 통일은 곧 유럽의 통일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과 달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유럽은 물론 세계를 다시 양분하고 있다.
현대사에서 큰 사변이라고 할 수 있는 68혁명과 독일 통일은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외국 땅에서 만들어진 나의 체험 공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68혁명은 나에게 젊음과 지성에게는 반항할 권리가 있고 이 반항을 통해서 역사는 새로운 추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독일 통일은 막스 베버가 지적했던 ‘직업으로서의 정치’의 덕목-열정, 책임감 그리고 냉철한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해방과 분단 80년을 맞는 한반도를 나의 기대 지평 위에 다시 떠올리면서 젊음과 지성, 그리고 정치인은 지구촌이 당면한 이 대전환의 시대에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충북 음성군이 가섭산 봉학골을 지역을 대표하는 산림복합 휴양 관광지로 만든다.
음성군은 59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읍성읍 용산리 봉학골 일원에 산림레포츠 단지를 조성한다고 13일 밝혔다.
앞서 음성군은 2021년 충북도가 주관하는 산림청의 지방전환(균특이양) 사업 ‘산림레포츠시설 설치’ 공모에 최종 선정돼 도비 37.7억원을 확보했다.
음성군은 봉학골에 가족단위의 탐방객들이 즐길 수 있는 산림레포츠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곳에 들어서는 레포츠단지는 15ha 규모로 자연 체험형 산림모험시설, 가족 단위의 야외 액티비티장, 산림지형을 활용한 어드벤처 코스 등 다양한 레포츠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내년 준공 목표다.
봉학골만의 지역 특성을 살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산림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꾸민다.
또한 산림욕장 등의 시설과도 연계해 방문객들이 레포츠를 즐긴 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공간도 마련한다.
봉학골은 산림욕장과 용산저수지 쑥부쟁이 둘레길이 조성돼 있어 지역 주민들의 산림휴양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목조식물원도 건립될 예정이다.
음성군 관계자는 “산림레포츠단지가 조성되면 봉학골 산림욕장과 봉학골 정원을 연계해 산림휴양과 레포츠 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지역 대표 관광지로 만들 것”이라며 “음성군만의 자연과 경관을 살린 녹색 명소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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