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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내시라고 얕보지 마라’…나라 위해 목숨 바친 ‘환관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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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8-1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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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환관·내관)의 별장인 성북동 별서 화재.’ 얼마전 서울 소재 문화유산(명승)인 ‘성북동 별서’ 내 목조 건물인 송석정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성북동 별서’의 전체 영역 중에 1953년에 신축된 송석정의 일부(3분의 1)가 파괴되었다.
‘성북동 별서’가 어떤 유산일까. 1992년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으로 재분류된 유산이다.
사적 지정 당시 이 별서의 주인공은 ‘환관’이 아니었다.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의친왕 이강(1877~1955)의 별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심각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이조판서 심상응’이 사료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문인 내시’의 별장
명승 지위가 졸지에 박탈될 운명에 놓였다. 그러나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성락원이 고종(1863~1907)의 호종 내관인 황윤명(1848~?)의 별서(별장)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내시’ 황윤명은 왕실, 그 중 중궁전에 속한 승전색(承傳色·왕 및 왕비의 명을 전달하는 내시 가운데 최고위직)이었다. 명례궁 대차지(종1품)를 역임했다.
명례궁은 중궁전에 속해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그 업무를 총괄한 핵심인물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황윤명은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로 칭송받은 ‘문인 내시’였다. ‘육교시사’(1870년대 후반 위항 문인의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황윤명의 글씨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근묵>에 실려있고, 역대서화가의 평전인 <근역사화징>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황윤명은 중국과 조선의 명적을 모아 <난운관법첩> 3책을 목판으로 간행했다. 내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문집(<춘파유고>·1983)이 간행됐다. 황윤명은 공립학교인 삼산의숙까지 설립한 인물이다.
■명성황후 피란지
‘성락원’은 어떻게 내관 황윤명의 별서로 특정됐는가. 성락원의 영벽지 서측 바위에 새겨진 시가 결정적인 증거다.
이 시가 황윤명의 문집인 <춘파유고(春坡遺稿)>에 수록된 시문과 정확히 일치했다.
“온 시냇물 모아 흐르지 못하도록 막고서(百川會不流) 연못 만들어 푸른 난간 둘렀어라(爲沼碧欄頭)…”
중국 고사에 출전이 없는 고유 창작시니, 영벽지의 시는 황윤명의 작품이 확실한 것이다.(이원호 국립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
‘명성황후의 피란’은 팩트인가. 명성황후(1851~1895)는 1885년 12월21일 황윤명 등 3명에게 ‘일편단충(一片丹忠)’이라는 유묵을 써서 하나씩 나눠준 바 있다. 그런데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한 ‘일편단충’에 ‘황후의 황윤명 별서 피란 사실’이 기록돼있다.
“(갑신정변 발발) 다음 날…액례(내시부 소속 하급관리) 5~6명이 어가를 호위해 혜화문으로 나가 성북동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쌍류동으로 따라갔다…태후, 왕비, 세자께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따라 ‘명승 성락원’은 ‘명승 성북동 별서’로 명칭만 바꾸고 문화유산의 지위를 유지했다.
■내시계의 악인
내시가 어떤 대우를 받았던가. ‘기능을 잃은 존재’로 치부되어 온갖 손가락질을 받고 희화화되었다.
또 군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음모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내시=비인류’로 치부됐다.
“내시는 더럽고 흉측하니 인류가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을 이루고 산다. 아내가 혹 다른 남자와 접촉이 있을 때 유부녀의 잘못으로 죄를 주니 어찌 천리와 인정에 합당한 것인가….”(<송와잡기>)
물론 내시 중에는 악인이 분명 있었다. 대표주자가 고려 의종(1146~1170) 시대 환관인 정함이다. 정함은 의종의 유모를 아내로 삼는 등 의종의 최측근임을 과시했다.
그는 내시로는 처음으로 내전승반(정 7품)의 벼슬을 받았고, 임금이 하사한 서대(1품 이상 고관이 차는 무소 뿔 허리띠)를 차고 다녔다. 또 대궐의 동남쪽 30보 안에 200칸이 넘는 저택에서 호화생활을 즐겼다. <고려사>는 “우뚝 솟은 저택의 누각은 마치 궁궐 같았다”면서 “이처럼 법을 어지럽힌 환관은 듣도 보고 못했다”고 탄식했다. 정함은 문신 김존중(?~1156) 등과 결탁해서 매관매직을 일삼고 아부하는 자를 등용했다.
1156년(의종 10) 등창을 앓고 누운 정함을 문병하는 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국권이 환관에게 돌아갔구나!”(<고려사절요> 1156년조)라고 수근댔다. <고려사>의 사관은 “환관 정함 등의 농단이 결국 정중부(1106~1179)의 무신란(1170)을 초래했다”고 꼬집었다.(<고려사절요> 1157년조)
■‘내시 명필’
그러나 정함 같은 내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황윤명처럼 글씨도 잘 쓰고 학식이 뛰어난 내시도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내시부에 소속된 내시(환관)들은 <논어>·<맹자> 등 사서와, <소학>, <삼강행실>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내시명필’ 이봉정(생몰년 미상)이다. 이봉정이 모신 선조(1567~1608)는 ‘임진왜란을 초래한 암군(暗君)’이라는 혹평에 시달리지만 ‘서예’에서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는 군주다.
그런데 이봉정은 선조의 붓과 벼루를 받들다가 임금의 필법까지 모방했다.
영의정 이준경(1499~1572)이 “내시인 네가 감히 어필(임금의 서법)을 모방하는가…고치지 않으면 자칫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 꾸짖었다. 깜짝 놀란 이봉정이 서법을 송설체(원나라 명필 조맹부의 필체)로 바꾸었다. 선조도 이봉정의 바뀐 필법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공사견문록>)
선조는 임진왜란 중에 직접 지은 어제시를 이봉정에게 내리기도 했다.
“…간곡히 이르노니 직무에 힘쓰고(丁寧寄語須勤職) 나의 말 저버리지 말고 실천하게.(莫負吾言更體哉)(<인조실록> 1648년 윤 3월17일)
이봉정이 선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가 또 있었다. 선조는 임진왜란 직후 의주 피란 당시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이봉정의 숨은 공을 밝혔다.
“과인이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는 문제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 시중 들던 이봉정이 ‘시세가 급하니 중국에 원병을 청해야 한다’고 적극 주선했다. 그래서 비변사에 명을 내려 의논하게 한 결과 의견이 합치됐다.”(1604년 3월23일)
이봉정은 광해군 연간에도 활약했다. 광해군이 “넌 선조 때는 매우 여위었는데, 지금은 살찌고 건강하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봉정이 답했다.
“모두가 전하(광해군)의 은혜 덕분입니다. 선조 때에는 너무도 부지런히 정사를 펼쳐서 저 같은 무리가 여위었지만 지금은 여유있게 일하니 이렇게 살이 찐 것입니다”고 대답했다.(태천잡기>)
얼핏 들으면 아부 같지만 곱씹어보면 ‘광해군, 당신은 부왕(선조)보다 정사에 게을리한다’는 날카로운 풍자였다.
■반학영(반하경)의 할복 순국
특히 필자의 심금을 울린 인물이 있다. 내시 반학영(이명 반하경·?~1910)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우국지사다.
전남 장성 출신인 반학영(반하경)은 1840년생으로 추정된다. 어려서 양자로 입양되어 경기 파주 교하리로 이주했다. 그는 철종-고종-순종 등 3대에 걸쳐 승전색을 역임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스스로 사퇴한 뒤 경기 파주에 은거했다. 그러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양숙부 홍택주를 찾아 “평생 임금의 은혜를 입고 살아온 내가 나라가 망했으나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결별을 고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파주 삽다리 장터에 이르러 “비록 내시의 신분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면서 대로변에서 할복으로 순국 했다. 반학영이 장터 게시판에 한 장의 유서를 걸었다.
“대대로 나라의 녹을 받는 신하였으니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기리오. 내가 배를 갈라 민영환(1861~1905)과 여러 충신과 함께 지하에서 27대 군왕을 섬길 것이니, 이천만 동포는 혈심(血心)으로 단결하여 충성을 본받으라.”
■궁문에 걸린 김순손의 머리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에게 죽음을 무릅쓴 충간을 서슴지않은 두 내시가 있었다. 환관 김순손(?~1504)과 김처선(?~1505)이다.
김순손은 연산군(1494~1506) 연간에 왕명을 전달하는 승전색으로 일해왔다. 그런데 연산군 즉위 후 1년 만에 사달이 일어났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의금부에 하옥하여 곤장 100대를 치고 지방 군대에 편입시키라”(<연산군일기> 1495년 6월29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때 연산군은 처벌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훗날 <연산군일기>가 산발적으로 밝힌 사건의 전모가 낯뜨거웠다.
연산군이 암말과 수말을 궁궐 안채(내정·內庭)까지 끌어들여 교미 장면을 구경하고 온갖 난잡한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 때는 부왕(성종)의 초상(장례식)이 끝나기도 전(1495년)이었다. 김순손은 이와같은 연산군의 난행에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연산군일기> 1496년 5월13일) 그 뿐이 아니었다.
김순손은 술에 취한 연산군이 선왕(성종)의 후궁을 간음하려 하자 “안됩니다”라고 말렸다.(<연산군일기> 1504년 3월12일)
김순손을 제주도로 쫓아낸 연산군은 “환관으로서 정치에 간여했고, 임금을 업신여긴 김순손을 제주도 현지에서 처형하라”(1496년 5월13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승정원과 3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승정원)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극형에 처할 죄를 지었다 해도 마땅히 서울로 압송해서 그 죄를 밝힌 뒤 처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반대했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서울로 압송하지 않고 굳이 ‘제주도 현지 처형’을 주장한 이유가 있다. 김순손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연산군의 난행’을 적나라하게 진술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의 뒤끝이 결국 작렬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의 피바람 속에서 제주에 안치되어 있던 김순손을 참형에 처했다.(1504년 3월30일) 연산군은 김순손의 머리를 단봉문(창덕궁의 문)에 두고 내시들에게 보인 뒤 내시부에 간직하게 했다.(4월13일)
■“김처선의 처(處)자도 쓰지 마!”
환관 김처선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정2품(판서급) 자헌대부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김처선의 운명은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급전직하한다. 연산군이 무오사화(1498)-갑자사화(1504)를 일으키면서 대대적인 살육에 나섰다. <연산군일기> 1505년 4월1일자 기사가 눈길을 끈다.
“연산군이 궁중에서 술에 몹시 취해서 임금을 꾸짖은 환관 김처선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임금을 꾸짖었다’는 그 내용은 무엇일까.
“김처선은 어둡고 음란한 연산군에게 매번 정성을 다해 간언했다. 연산군은 노여움을 속에 쌓아두고 있었다. 급기야 임금이 궁중에서 처용놀이를 했는데 음란함이 지나쳤다.”(<소문쇄록>)
1505년 4월1일이었다. 역시 거나한 술자리가 벌어졌고, 작심한 김처선이 독설을 퍼부었다.
“늙은 놈이 네 분 임금을 섬겼지만, 고금에 전하와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연산군이 크게 성을 내며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이 김처선의 갈빗대에 맞혔다. 그러나 김처선은 그치지 않았다.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연산군이 화살을 더 쏘아 땅에 넘어뜨리고, 그 다리를 끊고서 “일어나 다니라”고 명했다.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김처선)
연산군은 김처선의 혀를 자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 냈다. 김처선은 죽을 때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했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시체를 범에게 주면서 이성을 잃은 후속조치를 남발했다.(<연산군일기> 1505년 4월 4일)
우선 조정과 민간에서 ‘처(處)’ 자는 입밖에 내지도 말라는 명을 내렸다. 예컨대 그 해 과거시험 답안지에 ‘처(處)’ 자를 썼던 유생(권벌)의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 김처선의 집을 헐고, 연못을 파도록 했으며, 그의 죄명을 돌에 새겨 묻으라는 명까지 내렸다.
심지어 김처선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모두 개명하라는 명까지 내린다. 24절기 중 ‘처서(處暑)’를 ‘조서(徂暑)’로 고치기도 했다. 연산군은 ‘입은 화의 문(口是禍之門), 혀는 내 몸을 베는 칼(舌是斬身刀)’이라는 글귀를 나무패에 새겨 내시는 물론 관리들도 차고 다니도록 명했다.(1505년 1월29일)
■고려를 지킨 내시 방신우
고려 시대 내시 중 으뜸은 방신우(1267~1343)다. 원나라의 직접 통치를 받을 운명이던 고려를 구한 인물이다.
경북 상주 출신인 방신우는 충렬왕의 제1비인 제국대장공주(1259~1297)의 시중을 들기 위해 원나라로 갔다. 7명의 황제와 2명의 태후를 섬겼다. 그 덕에 온갖 금은보화와 함께 원나라 강남 지방의 땅 4000무(81만평)를 하사받았다.
충선왕(재위 1298, 1308~1313) 연간의 일이었다. 요양행성(원나라 행정 구역)의 우승상인 홍중희가 “충선왕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원나라 중서성에 무고하고 “충선왕을 소환하여 저(홍중희)와 대질시키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방신우는 황태후에게 “고려를 배반하고 도망온 홍중희가 거짓사실로 본국(고려)을 전복하려 한다”고 아뢰었다. 결국 홍중희는 무고죄로 곤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또 한번의 고비가 있었다.
삭방(북방)의 번왕(제후)인 팔려미사라는 인물이 무리를 이끌고 원나라에 귀순했다. 원나라 황실은 그들을 압록강 동쪽에 거주시키려고 하였다. 그때 방신우가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
“고려는 땅이 협소하고 산이 많아 농사나 목축업이 불가능합니다. 북방인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할 것이며, 동쪽민들을 동요시킬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원나라 황제가 “네 말이 옳다”고 여겨 중지시켰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일찍이 원나라가 고려에 행성(원나라 직할지)을 세우려 했다.
그러자 방신우가 황태후를 설득하여 그 계획을 취소시켰다.
■공민왕을 지킨 이강달·안도적
1363년(공민왕 12) 윤3월1일 흥왕사(개경 근처 사찰)에 머무르고 있던 공민왕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벌어졌다
이때 공민왕을 지키던 숙위(경호원)가 모두 달아났다. 반란의 무리가 침전에 들이닥치기 직전 환관 이강달이 왕을 업고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 이강달은 공민왕을 태후의 침실에 숨겼다.
그 순간 공민왕과 용모가 비슷한 환관 안도적이 침대 안에 들어가 누웠다. 반란군은 안도적을 공민왕으로 오인하고 죽였다. 그러나 공민왕의 무사와 함께 흥왕사 반란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강달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374년(공민왕 23) 9월 자제위 최만생·홍륜이 공민왕을 시해했을 때 이강달은 맨먼저 침전에 들어갔다. 이강달은 온 방이 피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강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밖으로 나와 “주상께서는 괜찮다”고 하고는 문을 걸어잠궜다.
왕의 죽음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이강달은 경복흥(?~1380·이인임(?~1388)·안사기(?~1375) 등을 불러 역적 토벌을 논의했다. 그 덕에 최만생과 홍륜 등은 체포되어 거열형에 처해졌다.
■“사대부가 너만 못하구나!”
내시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떠오른 실록 기사가 하나 있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1일자 기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피란길에 나서자)…명망 진신들이 각자 몸보신에 혈안이 되어…뿔뿔이 흩어졌다…서울~의주에 이르기까지 선조를 따르던 문·무관은 겨우 17명…나머지는 환관 수십명과 어의 허준(1539~1615), 마부, 하급관리 등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의주에 도착한 선조가 내관(내시)에게 말했다. “사대부가 너희들만도 못하구나.”
1910년 국권침탈 뒤 대로변에서 자결 순국한 내관 반학영 선생의 한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비록 내시의 몸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내가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제주에서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 일회용기가 아닌 다회용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제주도는 올해 제주시 2개 동 지역에서 시범 실시한 후 2026년 동 지역, 2027년 전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제주도는 13일부터 제주시 연동과 노형동에서 배달앱을 통한 다회용기 주문서비스를 본격 시행한다. 현재 해당 지역에서 88개 매장이 참여하고 있다. 도는 다회용기 배달 사업 확대가 일회용품 사용 감소, 탄소중립 실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비자는 ‘배달의민족’ 또는 ‘먹깨비’ 앱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가게 요청사항란에서 ‘다회용기 주문’을 선택하면 된다. 연동과 노형동 외 지역에서 주문하더라도 해당 매장이 배달할 수 있는 곳이면 다회용기 주문을 할 수 있다.
소비자는 식사 후 배달 전용 가방에 부착된 큐알(QR) 코드를 스캔해 회수를 신청하면 된다. 전문업체가 다회용기를 수거하고 세척한다.
제주도는 첫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다회용기 주문 활성화를 위해 소비자에게 건당 지역화폐 ‘탐나는전’ 2000원을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배달앱별로 추가 혜택도 제공한다. ‘배달의민족’에서는 시행 첫 주에 ‘제주 다회 용기’ 코드를 입력하면 5000원 할인 쿠폰을 지급한다. 15일부터 10일간 오픈 이벤트로 매일 150장씩 1만원 다회용기 주문 할인 쿠폰도 발급한다.
‘먹깨비’에서는 다회용기로 주문하면 건당 5000포인트를 페이백 방식으로 제공한다. 적립 포인트는 다음 주문 시 사용할 수 있다.
참여 매장에 대해서도 건당 1000원을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시범사업인 만큼 용기 대여 비용도 무료다.
강애숙 제주도 기후환경국장은 “2027년까지 제주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국비 확보와 인프라 확충을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소비자의 친환경 실천과 점주의 적극적인 참여가 소상공인의 회복과 성장, 환경보호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공학관 300동 연구실에서 ‘배터리 폭발’로 추정되는 불이 나 50여분 만에 진압됐다.
서울 관악소방서는 12일 오전 10시43분쯤 “서울대 공학관에서 배터리가 폭발했다”는 내용의 신고가 들어와 화재 진압에 나섰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차량 23대와 인력 82명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고 오전 11시38분쯤 불을 완전히 껐다.
당시 실험실엔 40여명이 있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4일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고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재명 정부가 단행한 대북 긴장 완화 조치를 평가 절하하며 적대적 태도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북측도 일부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사실부터 밝힌다면 무근거한 일방적 억측이고 여론조작 놀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우리의 대북 확성기 철거 작업에 호응해 일부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하지만 40여곳의 북한 확성기 중 철거된 곳은 극히 일부로 전해졌다.
김 부부장은 “항시적인 안전 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위태하고 저렬한 국가에 대한 우리의 립장은 보다 선명해져야 하며,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 그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적대적인 위협 세력으로 표현되고 영구 고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한·미가 오는 18일 시작되는 정례 한·미 연합 군사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의 훈련을 일부 조정한 것을 두고도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되며 헛수고로 될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 부부장은 “한국의 현 정권은 윤석열 정권 때 일방적으로 취한 조치들을 없애버리고는 그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평가받기를 기대하면서 누구의 호응을 유도해 보려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러한 잔꾀는 허망한 ‘개꿈’에 불과하며 전혀 우리의 관심을 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데 대해 여러 차례 밝혀왔으며, 이 결론적인 립장과 견해는 앞으로 우리의 헌법에 고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오는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반박했다. 그는 “우리가 미국 측에 무슨 리유로 메쎄지를 전달하겠는가”라며 “우리는 미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그러면서 “나는 이미 조미(북미)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 관계가 정책에 반영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과 미국이 낡은 시대의 사고방식에만 집착한다면 수뇌들 사이의 만남도 미국 측의 ‘희망’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하여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회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우리가 왜 관심이 없는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기습적으로 한 ‘공탁’을 이유로 피고인이 감형을 받는 등 사회적 논란을 낳아온 공탁 관련 양형기준을 손보기로 했다. 기습 공탁을 한 피고인이 선처받는 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양형위는 지난 11일 140차 전체회의를 열고 피해 회복 관련 양형인자 정비에 따른 양형기준 수정안, 증권·금융 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등을 논의했다고 12일 밝혔다. 양형기준은 판사가 형벌의 종류를 정하고 집행유예 여부를 결정할 때 참조하는 기준이다.
양형위는 전체 양형기준의 양형인자에서 ‘공탁 포함’이라는 문구를 삭제할 예정이다. 공탁은 피해자의 피해 복구를 위해 형사사건 피고인 등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이다. 기존의 전체 양형기준 양형인자에는 ‘실질적 피해 회복(공탁 포함)’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이 들어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감형만을 노리고 ‘기습 공탁’ ‘도둑 공탁’을 한 뒤 형을 감경받는 사례가 발생해 계속 비판이 나왔다.
양형위는 “피해 회복 방법의 하나로 기재된 ‘공탁 포함’ 문구로 인해 마치 공탁만 하면 당연히 감경 인자가 되는 것처럼 오인될 우려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양형위는 실질적 피해 회복의 정의 중 공탁에 대한 부분도 신중하게 보고, 공탁에 대한 피해자의 의견을 듣고 피고인이 공탁을 회수할 의사가 있는지 등을 조사해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인정하기로 했다.
양형위는 범행 양상 변화와 법률 개정으로 인한 법정형 상향 등을 반영해 증권·금융 범죄의 권고형량 범위도 새롭게 검토할 예정이다. 증권·금융 범죄 양형기준은 2012년 설정돼 시행된 이후 한 차례도 수정되지 않았다.
양형위는 이번 회의에서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개정으로 확대된 구성요건을 반영해 ‘허위 재무제표 작성·공시 및 감사보고서 허위 기재’ ‘회계정보 위·변조 및 감사조서 위·변조’ 전부를 양형기준 설정 대상 범죄에 포함하기로 했다. ‘범죄로 인한 이득액 또는 회피 손실액’을 기준으로 한 유형 분류 방식은 그대로 유지한다.
양형위는 앞으로 회의를 거쳐 증권·금융 범죄에 대한 권고형량 범위, 양형인자 등을 설정한 뒤 내년 3월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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