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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화곡 LS일렉 부산사업장 증축공사장에서 50대 작업자 추락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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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08-13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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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화곡 8일 오후 3시 54분쯤 부산 강서구 LS일렉트릭 부산사업장 증축공사 현장에서 내부 패널 작업을 하던 50대 남성 A씨가 10m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치료를 받다 숨졌다.
부산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패널 사이 파이프에 안전장비를 연결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LS일렉트릭은 올해 말까지 부산사업장 초고압 생산동 옆 4000평 규모 유휴부지에 1008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주간경향] 영화관이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영화를 7000원에 볼 수 있는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던 지난 7월 30일 86만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주말, 문화가 있는 날을 모두 포함해 올 들어 최다 관객 기록이다. 코로나19 이후 매년 7월 기준으로 평일에 이만한 관객이 몰린 것도 이날이 처음이다. 이어진 주말인 8월 2일에는 약 89만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으면서 올해 최다 관객 기록은 사흘 만에 깨졌다.
극장의 활기는 정부가 배포한 할인권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7월 25일부터 영화 관람 활성화를 위해 정상가보다 6000원 저렴하게 영화관을 이용할 수 있는 할인권 450만장을 배포했다. 주말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려면 1만5000원을 내야 하는데, 9000원에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위해 추가경정예산 271억원을 편성했다. 멀티플렉스 3사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배포된 할인권은 사흘 만인 7월 28일 모두 소진됐다.
할인권 배포와 함께 찾아온 극장의 활기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현재의 영화관 입장권 가격은 적정한가, 그간 관객들이 영화관에 발길을 끊은 이유는 가격 때문인가, 좀처럼 팬데믹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도 이와 관련 있나. 결론부터 말하면 입장권 가격은 문제였다. 그러나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고, 가장 큰 문제라 보기도 어려웠다.
30대 회사원 A씨는 8월 9일 모처럼 극장에 가기로 했다. 아내가 1인당 2매가 나오는 정부 할인권을 받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도 할인권을 받기 위해 영화관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수량이 모두 소진돼 받을 수 없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6개월 만이다. 지난 2월 <미키 17>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 전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2023년 8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점차 극장과 멀어지고 있는 그에게 할인권은 다시 극장을 찾는 마중물이 됐다.
A씨처럼 할인권을 계기로 극장을 찾는 관객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보면 할인권 배포가 완료된 31주차(7월 28일~8월 3일)에 약 412만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관객 수는 전년(약 369만명)보다 11.7% 증가했다. CGV 관계자는 “8월 3일까지 할인권이 30% 가까이 사용됐다.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면서 할인권을 이용해 더 많은 관객이 방문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할인권이 몰고 온 훈풍은 영화관 티켓값의 역설을 드러낸다. 결국 비싼 영화관 티켓값이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2018년 주말 기준 1만2000원이던 영화 티켓값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인상을 거듭했다. 2020년 1만3000원, 2021년 1만4000원을 거쳐 2022년 1만5000원이 됐고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극장가에서는 거듭된 인상이 팬데믹 기간 영화관의 극심한 침체를 견디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말한다. 한 극장 관계자는 “팬데믹 기간에 관객 수가 줄어든 가운데 일부 마니아층만 고정적으로 영화관을 찾는 상황이 이어졌다. 관객은 늘지 않는 상황에서 개봉한 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낮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객들에겐 부담으로 돌아왔다. 2명의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B씨(40)는 지난 7월 중순 영화관에서 가족과 함께 영화 <킹 오브 킹스>를 봤다. 4인 가족이 함께 영화관을 가려니 가격이 부담됐고, 조조할인을 받기 위해 아침 시간에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웠다. B씨는 “성인 기준으로 2만원도 넘는 4D 영화를 온 가족이 보려면 돈 10만원이 우습게 깨진다. 차라리 좀더 보태 놀이공원을 가거나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걸 선택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4D를 볼 때는 극장 가기 전부터 아이한테 ‘무서울 수도 있어, 물도 튀길 거야, 정말 갈 거야’를 몇 번을 물어보고 2명씩 팀을 나눠 한 팀만 가는 쪽으로 유도한다”고 했다. 지난 8월 3일 경기도 고양시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만난 고교 3학년생 이모씨와 강모씨도 극장에 자주 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가격 부담을 꼽았다. 마지막 극장 방문은 이씨의 경우는 지난해였고, 강씨는 중학생 때였다. 강씨는 “청소년은 1만2000원인데 가격도 부담이 된다. 오늘도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왔다”고 했다.
책 <영화 배급과 흥행>의 저자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입장권 가격이 높은 것은 맞고, 할인권 때문에 관객들이 움직인 것도 어느정도 사실인 것 같다. 정부도 가격이 높다고 평가했기에 영화 관람 활성화를 한다며 할인권을 배포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영진위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를 보면, 극장을 찾는 빈도가 감소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영화나 극장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24.2%)’라는 응답이 두 번째로 많았다. ‘경제적인 여유가 줄어들어서’라고 답변한 사람도 15.2%로 집계됐다. 가장 많이 나왔던 응답은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24.8%)’였다.
영진위 조사에서 보듯이 비싼 티켓값은 극장을 찾지 않는 여러 이유 중 하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좋은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극장 침체의 핵심 원인이 됐다는 데 영화계 인사 대부분은 동의했다. 한 예술극장의 관계자는 “가격도 진입장벽이 됐지만, 코로나19 이후 신작 제작 지원이 끊기고 새 작품이나 관객들이 찾을 만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게 주된 원인”이라고 했다.
영화계 인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영화 산업의 순환고리가 끊어졌다고 말한다. 영화 산업에서 가장 큰 수익을 차지하는 것은 극장 수입이다. 극장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극장과 투자·배급사가 이를 절반씩 나눈다. 투자·배급사는 손익분기점을 넘기 전까지는 극장 수익의 절반을 갖고, 손익분기점을 넘으면 이중 일부를 제작사에 지급한다. 제작사와 투자사는 영화 흥행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다음 작품을 제작할 여력을 갖게 된다. 다수의 영화가 흥행을 할 때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침체되면서 흥행 작품이 줄어들고, 재투자도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흥행에 실패하니 영화를 새로 만들기도 어렵고 볼 만한 영화도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구체적 원인을 두고는 영화 산업 안에서도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예컨대 한 극장 관계자는 “돈이 돌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대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하고 홍보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반면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 산업의 고도화된 수직계열화와 독과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지난해 국내 극장 매출의 96.5%를 차지했다. 특히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는 수직계열화로 상영 뿐 아니라 제작, 투자, 배급 등 전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영화제작사 관계자들은 스크린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렉스 3사가 제작·투자에 관여한 영화 등 특정 영화를 밀어주면서 영화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잃고, 영화의 다양성도 잃어버렸다고 본다. 영화제작사인 시네마6411의 대표이기도 한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장은 “특정 상업 공식을 따른 영화 제작과 투자가 심화되면서 200억~300억원을 투자하고 유명 배우를 캐스팅해 수익을 내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관객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산업 생태계가 악화됐다”고 했다.
영화 제작자들과 창작자들이 중심이 돼 발족한 ‘영화 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는 분배 구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영화 티켓값이 오르면 제작·배급사가 가져갈 몫도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관객 1명이 실제로 영화관에 낸 돈을 의미하는 ‘객단가’는 지난 7월 기준 약 9773원이었다. 팬데믹 이전인 2018년 7월과 비교하면 티켓값은 1만2000원에서 3000원 오른 데 반해, 객단가는 8397원에서 1400원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주말 티켓값이 1만5000원으로 올랐지만, 제값을 내고 보는 관객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원인으로는 통신사 할인 등 각종 프로모션이 꼽힌다. 영화인연대는 멀티플렉스 측이 각종 할인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는 의혹이 있음에도 통신사 등과의 계약 조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7월 멀티플렉스 3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극장 관계자는 “관객이 저렴하게 올 수 있도록 각종 제휴를 맺은 것이다. 각 사별로 제휴처들과 각각의 계약을 맺은 것이기에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을 뿐, 불공정한 정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극장 관계자도 “안 되는 영화를 억지로 편성하면 극장도 손해를 보는데 수직계열화의 불합리성은 시장에서 해소된다고 봐야 한다. 스크린 독과점은 대작 영화가 나왔을 때 한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고, 올해는 독점 논란이 있는 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 예매율, 좌석 판매 현황 등 데이터에 기반해 영화를 편성하고 있다”고 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7월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영화 관람 할인 사업에 대해 “단비처럼 지금 영화계에 가고 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계속 챙겨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할인권 배포가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된다고 보는 영화계 인사들조차 이 정책이 지속되는 데는 우려를 표했다. “암환자에게 연고를 발라주는 것”(한 제작사 대표), “극장에 오지 않는 이유가 정말로 티켓값이 비싸서인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 돈으로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것이 낫다”(극장 관계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이번 할인권 배포에 쓰인 예산 271억원은 올해 영화 산업 예산(829억원)의 30%에 해당한다.
영화인들이 입을 모아 요구하는 시급한 정책 개입은 무너진 ‘홀드백’ 질서의 복원이다. 과거에는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IPTV, OTT 등 다른 플랫폼에 공개되기까지 일정한 시간(홀드백)이 걸렸는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 유예기간이 급격히 무너졌다. 극장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칠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판권을 빠르게 2차 시장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올 초 개봉한 <미키 17>은 5주 만에, <승부>는 6주 만에 OTT에 공개됐다.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개봉 영화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는 극장을 찾지 않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영화계가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홀드백이 무너졌고, 현재 이를 회복할 자정능력이 없다. 극장에서 충분한 상영시간을 갖고 적절한 시기가 지난 후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영화 산업이 거진 마비 상태까지 왔기에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구상을 그려야 하는 시기다. 할인권 배포는 능사가 아니며 반복된다면 과거에 매여 새 출발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내시(환관·내관)의 별장인 성북동 별서 화재.’ 얼마전 서울 소재 문화유산(명승)인 ‘성북동 별서’ 내 목조 건물인 송석정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성북동 별서’의 전체 영역 중에 1953년에 신축된 송석정의 일부(3분의 1)가 파괴되었다.
‘성북동 별서’가 어떤 유산일까. 1992년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으로 재분류된 유산이다.
사적 지정 당시 이 별서의 주인공은 ‘환관’이 아니었다.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의친왕 이강(1877~1955)의 별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심각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이조판서 심상응’이 사료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문인 내시’의 별장
명승 지위가 졸지에 박탈될 운명에 놓였다. 그러나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성락원이 고종(1863~1907)의 호종 내관인 황윤명(1848~?)의 별서(별장)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내시’ 황윤명은 왕실, 그 중 중궁전에 속한 승전색(承傳色·왕 및 왕비의 명을 전달하는 내시 가운데 최고위직)이었다. 명례궁 대차지(종1품)를 역임했다.
명례궁은 중궁전에 속해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그 업무를 총괄한 핵심인물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황윤명은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로 칭송받은 ‘문인 내시’였다. ‘육교시사’(1870년대 후반 위항 문인의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황윤명의 글씨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의 <근묵>에 실려있고, 역대서화가의 평전인 <근역사화징>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황윤명은 중국과 조선의 명적을 모아 <난운관법첩> 3책을 목판으로 간행했다. 내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문집(<춘파유고>·1983)이 간행됐다. 황윤명은 공립학교인 삼산의숙까지 설립한 인물이다.
■명성황후 피란지
‘성락원’은 어떻게 내관 황윤명의 별서로 특정됐는가. 성락원의 영벽지 서측 바위에 새겨진 시가 결정적인 증거다.
이 시가 황윤명의 문집인 <춘파유고(春坡遺稿)>에 수록된 시문과 정확히 일치했다.
“온 시냇물 모아 흐르지 못하도록 막고서(百川會不流) 연못 만들어 푸른 난간 둘렀어라(爲沼碧欄頭)…”
중국 고사에 출전이 없는 고유 창작시니, 영벽지의 시는 황윤명의 작품이 확실한 것이다.(이원호 국립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
‘명성황후의 피란’은 팩트인가. 명성황후(1851~1895)는 1885년 12월21일 황윤명 등 3명에게 ‘일편단충(一片丹忠)’이라는 유묵을 써서 하나씩 나눠준 바 있다. 그런데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한 ‘일편단충’에 ‘황후의 황윤명 별서 피란 사실’이 기록돼있다.
“(갑신정변 발발) 다음 날…액례(내시부 소속 하급관리) 5~6명이 어가를 호위해 혜화문으로 나가 성북동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쌍류동으로 따라갔다…태후, 왕비, 세자께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따라 ‘명승 성락원’은 ‘명승 성북동 별서’로 명칭만 바꾸고 문화유산의 지위를 유지했다.
■내시계의 악인
내시가 어떤 대우를 받았던가. ‘기능을 잃은 존재’로 치부되어 온갖 손가락질을 받고 희화화되었다.
또 군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음모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내시=비인류’로 치부됐다.
“내시는 더럽고 흉측하니 인류가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을 이루고 산다. 아내가 혹 다른 남자와 접촉이 있을 때 유부녀의 잘못으로 죄를 주니 어찌 천리와 인정에 합당한 것인가….”(<송와잡기>)
물론 내시 중에는 악인이 분명 있었다. 대표주자가 고려 의종(1146~1170) 시대 환관인 정함이다. 정함은 의종의 유모를 아내로 삼는 등 의종의 최측근임을 과시했다.
그는 내시로는 처음으로 내전승반(정 7품)의 벼슬을 받았고, 임금이 하사한 서대(1품 이상 고관이 차는 무소 뿔 허리띠)를 차고 다녔다. 또 대궐의 동남쪽 30보 안에 200칸이 넘는 저택에서 호화생활을 즐겼다. <고려사>는 “우뚝 솟은 저택의 누각은 마치 궁궐 같았다”면서 “이처럼 법을 어지럽힌 환관은 듣도 보고 못했다”고 탄식했다. 정함은 문신 김존중(?~1156) 등과 결탁해서 매관매직을 일삼고 아부하는 자를 등용했다.
1156년(의종 10) 등창을 앓고 누운 정함을 문병하는 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국권이 환관에게 돌아갔구나!”(<고려사절요> 1156년조)라고 수근댔다. <고려사>의 사관은 “환관 정함 등의 농단이 결국 정중부(1106~1179)의 무신란(1170)을 초래했다”고 꼬집었다.(<고려사절요> 1157년조)
■‘내시 명필’
그러나 정함 같은 내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황윤명처럼 글씨도 잘 쓰고 학식이 뛰어난 내시도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내시부에 소속된 내시(환관)들은 <논어>·<맹자> 등 사서와, <소학>, <삼강행실>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내시명필’ 이봉정(생몰년 미상)이다. 이봉정이 모신 선조(1567~1608)는 ‘임진왜란을 초래한 암군(暗君)’이라는 혹평에 시달리지만 ‘서예’에서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는 군주다.
그런데 이봉정은 선조의 붓과 벼루를 받들다가 임금의 필법까지 모방했다.
영의정 이준경(1499~1572)이 “내시인 네가 감히 어필(임금의 서법)을 모방하는가…고치지 않으면 자칫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 꾸짖었다. 깜짝 놀란 이봉정이 서법을 송설체(원나라 명필 조맹부의 필체)로 바꾸었다. 선조도 이봉정의 바뀐 필법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공사견문록>)
선조는 임진왜란 중에 직접 지은 어제시를 이봉정에게 내리기도 했다.
“…간곡히 이르노니 직무에 힘쓰고(丁寧寄語須勤職) 나의 말 저버리지 말고 실천하게.(莫負吾言更體哉)(<인조실록> 1648년 윤 3월17일)
이봉정이 선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가 또 있었다. 선조는 임진왜란 직후 의주 피란 당시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이봉정의 숨은 공을 밝혔다.
“과인이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는 문제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 시중 들던 이봉정이 ‘시세가 급하니 중국에 원병을 청해야 한다’고 적극 주선했다. 그래서 비변사에 명을 내려 의논하게 한 결과 의견이 합치됐다.”(1604년 3월23일)
이봉정은 광해군 연간에도 활약했다. 광해군이 “넌 선조 때는 매우 여위었는데, 지금은 살찌고 건강하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봉정이 답했다.
“모두가 전하(광해군)의 은혜 덕분입니다. 선조 때에는 너무도 부지런히 정사를 펼쳐서 저 같은 무리가 여위었지만 지금은 여유있게 일하니 이렇게 살이 찐 것입니다”고 대답했다.(태천잡기>)
얼핏 들으면 아부 같지만 곱씹어보면 ‘광해군, 당신은 부왕(선조)보다 정사에 게을리한다’는 날카로운 풍자였다.
■반학영(반하경)의 할복 순국
특히 필자의 심금을 울린 인물이 있다. 내시 반학영(이명 반하경·?~1910)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우국지사다.
전남 장성 출신인 반학영(반하경)은 1840년생으로 추정된다. 어려서 양자로 입양되어 경기 파주 교하리로 이주했다. 그는 철종-고종-순종 등 3대에 걸쳐 승전색을 역임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스스로 사퇴한 뒤 경기 파주에 은거했다. 그러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양숙부 홍택주를 찾아 “평생 임금의 은혜를 입고 살아온 내가 나라가 망했으나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결별을 고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파주 삽다리 장터에 이르러 “비록 내시의 신분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면서 대로변에서 할복으로 순국 했다. 반학영이 장터 게시판에 한 장의 유서를 걸었다.
“대대로 나라의 녹을 받는 신하였으니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기리오. 내가 배를 갈라 민영환(1861~1905)과 여러 충신과 함께 지하에서 27대 군왕을 섬길 것이니, 이천만 동포는 혈심(血心)으로 단결하여 충성을 본받으라.”
■궁문에 걸린 김순손의 머리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에게 죽음을 무릅쓴 충간을 서슴지않은 두 내시가 있었다. 환관 김순손(?~1504)과 김처선(?~1505)이다.
김순손은 연산군(1494~1506) 연간에 왕명을 전달하는 승전색으로 일해왔다. 그런데 연산군 즉위 후 1년 만에 사달이 일어났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의금부에 하옥하여 곤장 100대를 치고 지방 군대에 편입시키라”(<연산군일기> 1495년 6월29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때 연산군은 처벌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훗날 <연산군일기>가 산발적으로 밝힌 사건의 전모가 낯뜨거웠다.
연산군이 암말과 수말을 궁궐 안채(내정·內庭)까지 끌어들여 교미 장면을 구경하고 온갖 난잡한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 때는 부왕(성종)의 초상(장례식)이 끝나기도 전(1495년)이었다. 김순손은 이와같은 연산군의 난행에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연산군일기> 1496년 5월13일) 그 뿐이 아니었다.
김순손은 술에 취한 연산군이 선왕(성종)의 후궁을 간음하려 하자 “안됩니다”라고 말렸다.(<연산군일기> 1504년 3월12일)
김순손을 제주도로 쫓아낸 연산군은 “환관으로서 정치에 간여했고, 임금을 업신여긴 김순손을 제주도 현지에서 처형하라”(1496년 5월13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승정원과 3사(홍문관·사헌부·사간원·승정원)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극형에 처할 죄를 지었다 해도 마땅히 서울로 압송해서 그 죄를 밝힌 뒤 처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반대했다.
연산군이 김순손을 서울로 압송하지 않고 굳이 ‘제주도 현지 처형’을 주장한 이유가 있다. 김순손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연산군의 난행’을 적나라하게 진술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의 뒤끝이 결국 작렬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의 피바람 속에서 제주에 안치되어 있던 김순손을 참형에 처했다.(1504년 3월30일) 연산군은 김순손의 머리를 단봉문(창덕궁의 문)에 두고 내시들에게 보인 뒤 내시부에 간직하게 했다.(4월13일)
■“김처선의 처(處)자도 쓰지 마!”
환관 김처선은 성종의 총애를 받아 정2품(판서급) 자헌대부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김처선의 운명은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급전직하한다. 연산군이 무오사화(1498)-갑자사화(1504)를 일으키면서 대대적인 살육에 나섰다. <연산군일기> 1505년 4월1일자 기사가 눈길을 끈다.
“연산군이 궁중에서 술에 몹시 취해서 임금을 꾸짖은 환관 김처선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임금을 꾸짖었다’는 그 내용은 무엇일까.
“김처선은 어둡고 음란한 연산군에게 매번 정성을 다해 간언했다. 연산군은 노여움을 속에 쌓아두고 있었다. 급기야 임금이 궁중에서 처용놀이를 했는데 음란함이 지나쳤다.”(<소문쇄록>)
1505년 4월1일이었다. 역시 거나한 술자리가 벌어졌고, 작심한 김처선이 독설을 퍼부었다.
“늙은 놈이 네 분 임금을 섬겼지만, 고금에 전하와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연산군이 크게 성을 내며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이 김처선의 갈빗대에 맞혔다. 그러나 김처선은 그치지 않았다.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연산군이 화살을 더 쏘아 땅에 넘어뜨리고, 그 다리를 끊고서 “일어나 다니라”고 명했다.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김처선)
연산군은 김처선의 혀를 자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 냈다. 김처선은 죽을 때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했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시체를 범에게 주면서 이성을 잃은 후속조치를 남발했다.(<연산군일기> 1505년 4월 4일)
우선 조정과 민간에서 ‘처(處)’ 자는 입밖에 내지도 말라는 명을 내렸다. 예컨대 그 해 과거시험 답안지에 ‘처(處)’ 자를 썼던 유생(권벌)의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 김처선의 집을 헐고, 연못을 파도록 했으며, 그의 죄명을 돌에 새겨 묻으라는 명까지 내렸다.
심지어 김처선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모두 개명하라는 명까지 내린다. 24절기 중 ‘처서(處暑)’를 ‘조서(徂暑)’로 고치기도 했다. 연산군은 ‘입은 화의 문(口是禍之門), 혀는 내 몸을 베는 칼(舌是斬身刀)’이라는 글귀를 나무패에 새겨 내시는 물론 관리들도 차고 다니도록 명했다.(1505년 1월29일)
■고려를 지킨 내시 방신우
고려 시대 내시 중 으뜸은 방신우(1267~1343)다. 원나라의 직접 통치를 받을 운명이던 고려를 구한 인물이다.
경북 상주 출신인 방신우는 충렬왕의 제1비인 제국대장공주(1259~1297)의 시중을 들기 위해 원나라로 갔다. 7명의 황제와 2명의 태후를 섬겼다. 그 덕에 온갖 금은보화와 함께 원나라 강남 지방의 땅 4000무(81만평)를 하사받았다.
충선왕(재위 1298, 1308~1313) 연간의 일이었다. 요양행성(원나라 행정 구역)의 우승상인 홍중희가 “충선왕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원나라 중서성에 무고하고 “충선왕을 소환하여 저(홍중희)와 대질시키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방신우는 황태후에게 “고려를 배반하고 도망온 홍중희가 거짓사실로 본국(고려)을 전복하려 한다”고 아뢰었다. 결국 홍중희는 무고죄로 곤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또 한번의 고비가 있었다.
삭방(북방)의 번왕(제후)인 팔려미사라는 인물이 무리를 이끌고 원나라에 귀순했다. 원나라 황실은 그들을 압록강 동쪽에 거주시키려고 하였다. 그때 방신우가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
“고려는 땅이 협소하고 산이 많아 농사나 목축업이 불가능합니다. 북방인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할 것이며, 동쪽민들을 동요시킬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원나라 황제가 “네 말이 옳다”고 여겨 중지시켰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일찍이 원나라가 고려에 행성(원나라 직할지)을 세우려 했다.
그러자 방신우가 황태후를 설득하여 그 계획을 취소시켰다.
■공민왕을 지킨 이강달·안도적
1363년(공민왕 12) 윤3월1일 흥왕사(개경 근처 사찰)에 머무르고 있던 공민왕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벌어졌다
이때 공민왕을 지키던 숙위(경호원)가 모두 달아났다. 반란의 무리가 침전에 들이닥치기 직전 환관 이강달이 왕을 업고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 이강달은 공민왕을 태후의 침실에 숨겼다.
그 순간 공민왕과 용모가 비슷한 환관 안도적이 침대 안에 들어가 누웠다. 반란군은 안도적을 공민왕으로 오인하고 죽였다. 그러나 공민왕의 무사와 함께 흥왕사 반란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강달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374년(공민왕 23) 9월 자제위 최만생·홍륜이 공민왕을 시해했을 때 이강달은 맨먼저 침전에 들어갔다. 이강달은 온 방이 피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강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밖으로 나와 “주상께서는 괜찮다”고 하고는 문을 걸어잠궜다.
왕의 죽음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이강달은 경복흥(?~1380·이인임(?~1388)·안사기(?~1375) 등을 불러 역적 토벌을 논의했다. 그 덕에 최만생과 홍륜 등은 체포되어 거열형에 처해졌다.
■“사대부가 너만 못하구나!”
내시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떠오른 실록 기사가 하나 있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1일자 기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피란길에 나서자)…명망 진신들이 각자 몸보신에 혈안이 되어…뿔뿔이 흩어졌다…서울~의주에 이르기까지 선조를 따르던 문·무관은 겨우 17명…나머지는 환관 수십명과 어의 허준(1539~1615), 마부, 하급관리 등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의주에 도착한 선조가 내관(내시)에게 말했다. “사대부가 너희들만도 못하구나.”
1910년 국권침탈 뒤 대로변에서 자결 순국한 내관 반학영 선생의 한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비록 내시의 몸이지만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내가 따뜻한 방에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북한이 대남 소음 방송 확성기 철거를 시작하면서 남한의 대북 방송 확성기 철거에 호응했다. 남북이 상호 심리전 수단을 없앤 것은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지키로 한 ‘남북 9·19 군사합의’ 내용 일부를 실질적으로 복원한 것으로 평가된다.
10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군은 전날 전방 일부 지역에서 확성기를 철거했다. 합참 관계자는 “전체 전방 지역에서 확성기 철거가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남한의 긴장 완화 조치에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11일 오후 2시 군 당국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은 그날 늦은 밤 소음 방송을 중단했다. 또 군 당국이 지난 4~5일 전방 지역에서 확성기를 철거하자 북한도 전날부터 확성기 일부 철거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국가정보원이 대북방송을 중단하자 북한은 대부분의 대북방송 방해전파 발신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상호 조치들은 양측의 사전 교감없이 진행됐다.
특히 북한의 이번 조치가 한·미 군사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 계획이 지난 7일 발표된 이후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당시 한·미는 과거 UFS 기간에 대부분 몰아서 실시했던 야외기동훈련(FTX)의 절반가량을 다음 달에 분산한다고 밝혔는데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군사적 긴장 악화가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러시아에 병력과 군수를 지원하며, 대규모 병력을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하는 ‘지방발전 20×10’사업에 투입하고 있다”며 “접경지역 긴장 완화는 북한도 바라는 일”이라고 말했다.
남북이 심리전 수단을 없애 우발적 충돌 소지를 약화한 것은 군사합의 내용을 일부 복원한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도 적대 행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군사합의에는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 DMZ 평화지대화, NLL 평화수역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등 군사적 신뢰구축 논의 등이 담겼다.
다만 단기간에 남북이 대화 재개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8년 9월 체결된 군사합의는 남북이 ‘같은 민족이며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인식을 전제로 두는 반면, 북한은 2023년 12월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28일 담화에서 “조·한(남북)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이 ‘행동 대 행동’을 주고받으면 실질적으로 적대 행위를 중지한 군사합의 내용의 일부를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두 국가’를 선언한 북한과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등 군사적 신뢰 구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대화 채널을 복구하려는 정부 노력에는 호응하지 않고 있다. 동·서해를 각각 표류하다 구조된 북한 주민 6명을 지난달 바닷길을 통해 북한으로 되돌려 보냈을 때나 지난 5일 북한 주민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북한에 인도하려 했을 때 북한은 남측 연락에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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