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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치료제구입 순자산 2조원 ‘축구계 첫 억만장자’···“통산 1000골까지 달린다” 선언한 호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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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5-10-1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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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치료제구입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0·알나스르)가 블룸버그 집계 기준 ‘축구 역사상 첫 억만장자 선수’로 등극했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블룸버그는 8일(현지시간) 발표한 ‘억만장자 지수’에 호날두를 처음 포함시키며, 그의 순자산을 약 14억달러(1조9912억원)로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호날두의 재산이 축구 선수 연봉뿐 아니라 20년 넘게 이어진 광고 계약, 브랜드 투자, 부동산 및 사업 수익 등을 통해 축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2002년 프로에 데뷔한 이후 2023년까지 총 5억5000만달러가 넘는 급여를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2010년대부터 이어진 나이키와의 장기 후원 계약은 연간 약 1800만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개인 브랜드 ‘CR7’을 통한 의류·향수·호텔 사업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호날두는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 프로리그 알나스르에 합류하면서 축구 역사상 최고 연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연봉은 1억7700만파운드(약 3374억원)였다. 블룸버그는 “호날두는 단순한 운동선수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기능하고 있다. 축구 이외 사업 영역에서도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있어, 순자산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알나스르와의 계약을 최근 2027년 6월까지 2년 연장(총액 4억달러 이상)하면서 42세 이후까지 현역을 이어가게 됐다.
호날두는 최다골과 월드컵 우승 열망도 드러냈다. “1000골까지 가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고 득점자 중 한 명인 호날두는 공식 경기(클럽+국가대표)에서 945골을 넣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포르투갈 방송 카날11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멈춰야 할 때다. 모든 걸 다 이뤘다. 왜 아직도 1000골을 넣으려 하느냐’고 말한다”며 “여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고, 클럽과 대표팀 모두에 도움이 되고 있다. 왜 멈춰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언젠가 끝은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몇년을 최대한 즐기고 싶다. 나중에 후회 없이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두고도 “국가대표로 뛰는 건 나에게 영광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월드컵에 나가 우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던 김향득 사진작가가 지난 7일 별세했다. 향년 62세. 고인의 장례는 ‘민주장’으로 치러진다.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와 5·18기념재단, 5·18 공법 3단체는 9일 “김 사진작가의 장례를 ‘민주장’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10일 오전 발인을 거쳐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거행한다”고 밝혔다.
고인의 영결식과 안장식은 10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다. 고인은 5·18 당시 광주 대동고 3학년이었다.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계엄군의 옛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맞서 끝까지 현장을 지켰다. 그는 1980년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 인근 YWCA에서 계엄군들에게 붙잡혔다.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간 고인은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다 38일 만에야 풀려났다.
이후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며 파킨슨병을 앓았다. 2023년 4월 중순 자택에서 쓰러져 폐렴과 신우신염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지인과 시민들이 ‘김향득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을 결성해 쾌유를 빌었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고인은 2004년 전남도청이 전남 무안으로 이전한 이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를 위해 옛 도청 일대가 훼손되는 것을 보고 2007년부터 카메라를 들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고인은 카메라를 든 이유에 대해 “5·18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게 무섭고 안타까웠다”고 했다.
5·18의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한 그는 2013년 5월 사적지와 항쟁추모탑 사진 50여점을 모아 첫 번째 전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었다. 2015년에는 방치되고 훼손된 5·18 사적지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와 촛불집회 등 옛 전남도청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의 희로애락도 앵글에 담았다.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금남로와 5·18 사적 등을 꾸준히 기록하며 전시를 이어온 그의 사연은 2022년 제42주년 5·18 기념식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생전 고인은 “광주의 민중은 과거나 현재나 도청으로 모이고, 역사를 바꿔갔다”면서 “광주 곳곳에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는 곳곳에 5·18의 역사가 서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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