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부전치료제구입 [송두율 칼럼]적대적 두 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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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5-10-15 02:11본문
조국통일이라는 선대의 기조를 과감히 접은 김 위원장의 결단은 체제경쟁의 실패를 인정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고육지계라고 보는 분석이 있다. 이런 분석으로부터, 흡수통일 이외에 어떤 다른 길이 없으므로 지금보다 더 정교한 대북 통일 공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한반도에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적대적이 아니라 평화적인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계속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러한 두 갈래 주장의 주안점은 다 같이 한반도 내부의 변화에 놓여 있지만, 국제정치적 역학에 나타나고 있는 큰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의 배경에는 ‘신냉전’이라는 국제정세에 대한 북의 판단이 깔렸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했던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막을 내리고 이미 다극체제가 등장했으며 이런 변화의 중심에 중국을 비롯한 이른바 ‘브릭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사우스’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은 우선 모든 역량을 강화해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체제 수호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남측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다.
한 영토 안에 두 주권국가가 공존하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영토주권의 배타적 특성 때문이다. 한 영토 안에서 서로 싸우는 두 정치 세력 가운데 스스로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고 판단하는 쪽은 대체로 두 국가론에 반대하고,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편은 이를 찬성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두고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도출된 두 국가 해법이 그러한 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 내놓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20개 조항 가운데 팔레스타인 국가 성립의 과도기적인 가능성에 대한 짧은 언급은 있지만, 고전적인 의미에서 자주독립 국가 팔레스타인을 전제하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해선 어떤 명시적인 조항도 없다.
한국과 독일의 운명 동일시 곤란
이와 달리 원래 하나였던 국가가 둘로 갈라졌음에도 평화스럽게 공존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와 슬로바키아 같은 사례도 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성립한, 오스트리아가 주도한 독일연방(1815)에서 새롭게 부상한 프러시아는 오스트리아와 벌였던 ‘형제의 전쟁’(1866)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1871년 독일제국을 탄생시켰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독일 정치에서 제외됐고 다민족 국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남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탄생했으나 생제르맹 조약(1919)에 의해 독일과의 합병은 금지됐다. 1938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된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한 부분이 됐다. 1945년 패전과 더불어 연합국에 의해 통치됐다가 1955년 국가조약에 따라 영세 중립국이 됐고 1995년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이처럼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이혼·재결합을 경험했지만, 오늘날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키며 이웃 독일과 평화롭게 지낸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탄생했다. 같은 슬라브어권에 속하지만, 독일과 가까워 산업화가 빨랐던 체코와 달리 헝가리와 인접한 슬로바키아는 상대적으로 농업적 구조를 가졌다. 1938년 뮌헨 협정으로 나치 독일에 병합되면서 사라졌던 체코슬로바키아는 1948년 소련의 영향 아래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가 되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좌절된 후 체코와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연방국가가 됐으며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알린 1989년까지 존속했다. 이때 이 두 국가는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지평을 열었다. 체코는 조속한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하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슬로바키아는 완만한 개혁과 민족적인 정체성을 강조한 연방국가를 원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큰 충돌 없이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두 국가로 새롭게 출발, 2004년 동시에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됐다.
‘합의 이혼’식의 두 국가 성립 과정은 다민족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벌어진 민족 간의 대규모 유혈 참극과 비교되면서 평화스러운 ‘벨벳 이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 분단과 통일 문제의 맥락에서 동서독의 두 국가 성립, 갈등 그리고 통일처럼 자주 논의되는 나라는 없다. 오스트리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진원지였던 독일의 주변부에 있는 나라로서 이혼과 재결합의 복잡한 과정을 겪었지만, 안정된 결말을 보았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됐지만, 강대국에 의한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경험한 한반도의 운명을 나치 독일의 패망 후 독일 땅에 성립된 두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동안 서독은 남한, 동독은 북한이라는 전제로부터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았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다. 동독이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 민족’이라는 개념을 털어내고 ‘사회주의 독일국가, 사회주의 민족’이라고 규정한 것에 빗대어 북도 이제 비슷한 논거로 민족 개념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있다. 동서독을 막론하고 독일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안고 있는 원죄적인 무게 때문에 오랫동안 민족 문제 공론화를 주저했다. 일제와 미제와의 투쟁을 자기 정체성의 뿌리로 보는 북이 하루아침에 민족 개념을 버리고 동독처럼 ‘두 국가, 두 민족’으로 돌아섰다는 성급한 주장은 동독과 북한 사회주의의 성립 배경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갈라지든 합치든 비극은 없어야
공통의 언어, 문화, 역사적 정체성을 매개로 성립된 공동체를 뜻하는 민족과 일반적으로 영토, 국민, 국제법상 인정된 주권을 가진 정치적 실체인 국가의 내용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한민족의 성원이지만 대한민국 국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 아니면 독일 시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독처럼 적대적 두 국가론이 헌법 개정을 통해 확정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과 같은 개념이 등장할 수 있겠지만, 이는 아직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9월20~2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 13차 회의에서 “우리는 명백히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면서 “적대국과 통일을 논한다는 것은 완전한 집착과 집념의 표현일 뿐이며 그렇게 고집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 발언도 두 개 국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두 민족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
그렇다면 1991년 체결돼 나름대로 ‘6·15 남북공동선언’(2000)과 ‘9·19 평양 공동선언’(2018) 같은 긴장 완화의 이정표를 마련했던 ‘남북 기본합의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합의서는 1972년 동서독 간의 ‘기본조약’처럼 두 국가인 서독과 동독 간의 조약은 아니었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선언적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다가 법적으로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사문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그동안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관성적으로 이끌어온 통일의 규범이나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다시 한번 검토해보라고 요구한다. 이는 현행 헌법이 규정하는 영토 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과 평화통일 조항(“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이 담고 있는 통일국가의 정체성과 한반도의 북쪽에는 통치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의 엄연한 모순을 다시 묻게 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 조사 2024’도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 조사에서 통일보다는 분단을 선호하고 북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비율이 높아가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념보다는 현실을, 공동체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의도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공리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생각된다. 하나의 국가가 둘로 갈라지고, 또 두 국가가 하나로 되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지 이의 결과가 비극과 재앙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함께 남기고 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와 히스테리시스 효과
잔디깔린 정원이 있는 2층 내 집을 마련했다. 25년째 근무한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두 명의 아이들, 한 마리의 반려견,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옆에 있다. 회사가 선물로 보내온 장어로 바베큐 해먹는 날, 가족들을 끌어안은 만수는 하늘을 보며 독백한다. “다 이뤘다”
블랙유머의 대가, 박찬욱 감독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끌어갈리가 없다. 최고의 행복한 순간은 최악의 불행을 위한 밑밥이라는 것 쯤은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다.
만수는 돌연 해고를 통보받는다. 자신이 몸담은 ‘태양제지’가 인수합병됐다. “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한다, 그런다면서요. 한국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너 모가지야” 만수는 노조를 조직해 구조조정을 막아보려하지만 외국계 경영인들이 받아들일리 없다. 결국 목이 잘려가는 충격을 받은 만수.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석달 안에 반드시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취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평생 해온 일은 제지업. 불황에 빠진 제지산업은 이제 있는 사람도 더 해고해야할 판이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하나.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그 자리를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또다른 제지업체 ‘문제지’에 근무하는 반장이 사라진다면 그 자리는 내 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 전에 재취업을 시도하는 다른 베테랑이 있는가 살펴봐야 한다. 이들 또한 만수의 잠재적인 경쟁자다. 만수가 말한다.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원작은 도널드 E.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다. 박찬욱의 손을 지나면서 강렬한 미장센과 시각적 스타일, 심미적인 폭력, 블랙유머, 스릴러와 호러를 오가는 구성 등이 덧입혀졌다.
실직은 만수의 잘못이 아니다. 만수가 일을 못해서 잘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종이의 수요가 줄었다. 자동화 공정이 도입되면서 일거리도 점점 줄고 있다.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인력감축에 나서고 그 과정에서 해고가 이뤄진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회사경영진의 말을 끝으로 만수는 실직자가 됐다.
만수가 호언한대로 석달안에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만수는 실직자다. 아내는 “괜찮아. 언젠가 취직되겠지”라며 만수를 달래주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만수는 초조해질 뿐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취미생활과 학원을 끊었고, 대출이자를 내지 못한 집은 팔리기 직전이다.
무엇보다 만수가 걱정하는 것은 히스테리시스 효과 (Hysteresis Effect)다. 히스테리시스 효과란 외부 자극이 사라져도 시스템이 곧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과거의 영향이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력효과’라고도 부른다. 고용분야에서는 한 번 실업 상태에 빠지면, 노동시장 복귀가 어려워지는 현상을 뜻한다. 실직기간이 길면 길 수록 자신이 가졌던 기술과 경험이 더 낡아져 취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히스테리시스 효과는 과학에서 나온 용어다. 히스테리시스는 지연 또는 지속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다. 영국의 물리학자 알프레드 유잉(Alfred Ewing)은 금속자기 성질을 연구하면서 쇠에 자기장을 가하면 자성을 띄는데, 일정한 시간 뒤 자기장을 제거해도 자석성질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히스테리시스 효과’라 명명했다. 한번 찌그러진 깡통을 완벽하게 다시 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학이 히스테리시스 효과를 주목하게 된 것은 1980년대다. 미국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와 로렌스 서머스는 1986년 논문 ‘히스테리시스와 유럽실업문제’를 통해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유럽이 침체에 빠지며 실직이 많아졌는데, 이후 경기가 회복되도 고용률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은 그 이유로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직장에서 해고된 외부인과 직장에서 살아남은 내부인이 발생하는데, 경기가 회복된 이후 내부인들은 높은 임금을 유지하려 해 외부인들이 이때문에 재취업이 어려워 지고, 그 결과로 경기가 회복되어도 이전의 실업률로 회복되지않는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무역적자를 축소하기 위해 미국이 밀어부쳤던 플라자합의도 종종 히스테리시스 효과의 사례로 인용된다. 미국은 수출을 늘리고 수입은 줄이기 위해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화 가치를 절하했다. 마침내 미 달러화가 대폭 절하됐지만, 무역수지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이미 자동차, 철강, 전자 등에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하락해 일본, 독일 등과 경쟁하기 힘들었고, 계속된 수입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원유 등 원자재 수입가격이 뛰면서 무역수지 적자폭은 큰 개선이 없었다. 무역수지 흑자구조가 한번 깨지고 나니 다시 과거처럼 돌아가기가 어려워 진 것이다.
이처럼 히스테리시스 효과는 과거의 경제 충격이 사라지지 않고 국내총생산(GDP)과 고용 등 경제지표에 계속 부정적 영향을 주는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정착됐다. 코로나19 당시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경제가 과거의 경로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히스테리시스 효과가 부각되기도 했다.
실업기간이 1년이 넘어서자 만수는 극단적인 결심을 한다. 제지회사 문제지의 최선출 반장은 “거긴 이제 젊은 사람만 뽑아. 나이도 있고, 기계도 많이 바뀌었어. 네가 거기 들어가긴 힘들 거야”라며 이력서를 내민 만수에게 손사레를 친다. 하지만 만수의 진짜 카드는 따로 있다.
마침내 제지회사 ‘문제지’에 입사한 만수. 회사는 인공지능(AI) 로봇에 의해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더는 숙련된 작업자가 쇠막대기로 프레스롤을 치며 제지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대가 아니다. “실직당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직당한 후에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한 거야.” 인간경쟁자를 물리친 만수는 비로소 승전가를 부른다. 자신의 지략으로 히스테리시스 효과를 극복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로봇에 둘러싸인 유일무이한 인간 노동자인 그는 과연 퇴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올해 들어 서울 집값이 연일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 ‘6억원’ 한도라는 고강도 대출 규제를 내놓고 공급 확대 계획도 발표했는데도 서울 집값 상승률이 떨어질 줄 모르고 있는 건데요. 서울이 아닌 지역은 오르기 힘들다고 내다보는 투자자와 실수요자까지 모두 서울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에디터픽에서는 이 같은 현실을 짚어본 경향신문 기획기사 ‘상급지 갈아타기’를 독자님께 소개해드립니다. 최미랑·김지혜 경제부 기자가 최근 갈아타기 대열에 합류한 유주택자들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울산에서 일하는 30대 맞벌이 서모씨 부부는 올해 울산 아파트를 팔고 서울 아파트 ‘갈아타기’ 매수에 성공했습니다.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를 매수하는 ‘프로젝트’에는 서씨의 형, 부모 등 온 가족이 동원됐다고 합니다. 울산 아파트를 8억원에 팔았는데, 서울 집을 사기 위해선 9억원이 부족했다고 해요. 부족한 돈은 전세보증금으로 메꾸는 갭투자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서씨의 형 부부가 살던 집을 팔고 서씨 부부의 집으로 전세를 들어오기로 하고, 나머지 돈은 부모님에게 증여를 받아 매수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서울에 사는 싱글 직장인 박모씨(32)는 지난해 8월 경기 안양시의 6억원짜리 아파트를 샀습니다. 그가 매수할 수 있는 입지 중 가장 높은 ‘급지’였기 때문인데요. 박씨는 이 아파트에 전세 세입자를 들이고, 오래된 단독주택에 월세를 살며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다음 목표는 ‘인서울 매수’입니다. 한 단계 ‘상급지’로 꼽히는 서울 관악구나 성북구 길음동 아파트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엔 서울 아파트 매수자금 마련 용도로 주식 투자도 시작했습니다. 여기엔 ‘서울 아파트는 불패’라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씨는 ‘상급지’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사는 곳마저 등급으로 나누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 부동산 하락기 이후 비수도권 아파트값은 맥을 못 추고 서울만 폭등하자 박씨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박씨는 이를 계기로 ‘상급지 갈아타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는 “(상급지) 지도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전에 사는 김모씨(33)는 아파트 갭투자로 ‘역전세’(전세보증금이 하락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금이 늘어난 현상)를 맞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부동산 투자를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서울에 사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고 해요. 그는 갭투자 중인 대전의 아파트 두 채를 팔고 서울 집을 사는 게 목표입니다. 김씨는 “정부가 규제지역을 확대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규제지역을 추가할 때마다 인접 지역 아파트값이 ‘풍선효과’로 오르던 문재인 정부 때의 기억이 선명해서입니다.
‘상급지 갈아타기’란 말 그대로 기존에 갖고 있는 집을 팔고 입지가 더 좋은 지역의 집을 사는 걸 뜻합니다. ‘하급지→중급지→상급지→최상급지’ 순으로 갈아탄다는 건데요. 언제부턴가 온라인상에서는 서울 부동산의 ‘급지도’가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값이 가장 빠르게 오르는 강남구 압구정동은 ‘1급’, 아파트값이 오를 가능성이 적은 곳은 ‘하급지’로 일컬어지고 있는데요.
과거의 주택 ‘갈아타기’는 일정 정도 가계소득이 늘면 자연스레 집 크기를 늘려가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이 지나치게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젠 가계소득을 모아서는 살 수 없는 수준에 달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대출과 전세금을 지렛대 삼아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점프’하는 방식이 대세가 되어버렸죠.
그렇다면 서울 아파트는 ‘영끌 대출’(영혼까지 끌어모을 정도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다는 뜻)을 감수해도 될 만큼 확실한 투자처일까요? 실제 투자 수익률을 살펴보면, 서울 부동산은 다른 금융자산을 압도하는 건 사실이예요. 현대차증권이 부동산114과 블룸버그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주택의 10년 수익률은 157.8%로 코스피지수의 6배, 미국 달러의 8배에 달했어요.
이런 까닭에 서울 아파트는 모든 금융자산의 최종 종착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주택 자산과 금융자산 간 전이효과’에 따르면 국채·주식·가상자산·외환 등 주요 금융자산에서 벌어들인 돈은 서울 아파트, 그 중에서도 최상급지인 강남아파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정 교수는 “강남 아파트가 주식이나 가상자산 등 고위험 자산에서 실현된 수익은 물론, 자영업 불황기 ‘꼬마빌딩’ 같은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서 이탈한 자금이 유입되는 유동성의 최종 도착지임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최종 종착지 ‘강남’을 향한 갈아타기 열풍이 서울 전체 아파트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겁니다. 남혁우 우리은행 WM영업전략부 부동산 연구원은 “강남 등 선호지역으로 갈아타려는 수요자들이 대기수요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공급자로서 자기 집값을 올리기 때문에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하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갈아타기’ 광풍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세금으로 주택 보유에 따른 부담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문윤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022년 ‘주택 보유 과세의 귀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부동산과 같은 시장에 대한 과세는 주택 가격을 하락시키고 주택에 대한 투자자본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강남 3구와 한강벨트에 집중된 서울의 ‘중심’을 분산하기 위해 정부가 새로운 비전을 시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강남 못지않게 ‘살기 좋은 곳’을 정책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자족 기능이 없이 서울로의 출퇴근만 뒷받침하는 신도시가 아니라, 강남처럼 일자리·주거·문화·생활 여건이 두루 충족되는 중심지를 조성해야 한다”며 “서울 금천·구로구 등 소외된 제조업 중심 지역을 재편해 성장동력의 거점으로 삼는 방편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남 불패’라는 믿음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갈아타기의 굴레,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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