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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미디어 위장 결혼식서 알게 된 전세대출 사기 일당···150억 가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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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08-3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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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미디어 가짜 임대인과 임차인을 모집한 뒤 피해자 명의로 150억원 상당의 전세대출을 받아 가로챈 일당이 검찰에 넘겨졌다.
세종경찰청 강력마약범죄수사대는 사기 등 혐의로 총책 A씨와 모집책 B씨 등 3명을 구속하고, 16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 등은 2022년 6월부터 지난 1월까지 가짜 임대인과 임차인 역할을 할 공범을 모집한 뒤 지인들에게 ‘부동산 투자 시 투자금의 10%를 준다’고 속이고 자금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건네받아 150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15개 시중 금융기관에서 88회에 걸쳐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총책인 A씨가 위장 결혼식을 올릴 당시 결혼식 하객 등 역할 대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 지시에 따라 허위 임대인과 임차인을 모집하고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허위 부동산 전세 계약서를 작성하고, 금융기관 등의 확인에 대비하기 위해 피해자 명의의 휴대전화를 몰래 개통한 뒤 금융기관으로부터 전세대출과 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범행은 A씨가 피해자 명의로 받은 대출금을 돌려막는 과정에서 채무 이자를 변제하지 못하자 금융기관에서 피해자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발각됐다.
지난 1월부터 일부 피해자의 고소가 경찰에 접수되면서 수사가 시작됐고, 사안의 중대성과 피해 규모가 확대될 것을 우려해 세종경찰청은 다른 경찰서에 접수된 고소 사건들을 병합해 수사해 왔다.
A씨는 피해자들과 금융기관을 속여 받은 전세 대출금 일부를 고가의 외제 자동차와 명품 귀금속 구입, 유흥비, 생활비, 범행에 가담한 공범들에게 수당 명목 등으로 지급하는 데 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해 보전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서민의 주거 안전을 위협하는 민생침해 금융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병신년(1596) 선조가 태의 허준(1539~1615)을 불러 ‘…의서 한 권을 편집하도록 하라’고 명했다…그러다 정유재란 발발(1597)로 중단….”
월사 이정구(1564~1635)가 쓴 <동의보감> ‘서문’에 등장하는 편찬 시기이다. 1596년 선조의 명에 따라 허준이 책임지고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정유재란 때문에 중단됐고, 이후 허준 단독으로 편찬 임무를 수행해 1610년 25권으로 완성하고 1613년 초간본이 빛을 보았다는 게 정설이었다.
■4년 앞선 초고본?
그런데 최근 선조의 지시보다 4년 앞선 1592년 4월 무렵에 작성된 <동의보감> 초고본을 확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경향신문 2025년 7월24일 보도) 연구자는 이 초고본을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최초의 원고로 파악했다.
목차나 내용 등에서 최종본과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수많은 메모와 교정부호를 통해 내용 수정을 염두에 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초고본(추정)에서 ‘외형편 안(眼·눈)’편에 ‘蠐螬(제조·굼벵이)’를 쓰면서 ‘즉상두(卽桑蠹·즉 뽕나무 벌레)’라는 주석을 달라는 표시를 해놨다. 그런데 최종본(1613년 발행)이 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제조’라고 써놓고 작은 글씨로 ‘즉상두(이것은 뽕나무 벌레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또 초고본(추정)에서 ‘不伏水土病與內傷同(기후와 풍토가 맞지않는 병은 내상과 같다)’ 항목 위에 ‘…내상을 조리하고 보하고 약재를 쓰라’고 표시해놓았다. 역시 최종본은 이 표시를 반영하여 ‘내상조보약재’ 18종을 나열했다.
무엇보다 제3책 ‘잡병편 권4’의 마지막 쪽 왼쪽에 쓴 글귀가 눈길을 끈다. ‘임진(壬辰) 4월 초사일 종필(終筆).’
<동의보감>이 1610년 완성되었으니 ‘임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임진년’을 가리킨다.
또한 ‘종필(終筆)’은 ‘글을 마무리 짓다’는 의미다. 즉 허준이 1592년 4월4일 무렵, 제3책 ‘잡병편 권4’까지 집필한 뒤 일단 글쓰기를 중단했다는 의미다. 동의보감 초고본을 작성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발발(1592년 4월13일)하자, 글쓰기가 중단된 시점, 즉 ‘4월4일 집필을 끝낸다’고 했을 가능성이 짙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거론된 견해인만큼 학계의 검토와 논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공인 여부는 학계에 맡겨두고 싶다. 대신 말 나온 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허준과 동의보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빙그레 웃는 승려상
허준은 그동안 몇차례 대하사극에서 소개되는 등 그 삶이 대중에게 폭넓게 알려져있다.
TV 드라마 때문인지 허준 하면 배우 전광열씨나 고 김주혁씨를 연상케 한다.
물론 허준의 초상화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의 초상화를 보았다는 박미(1592~1645)의 ‘얼평’이 눈길을 끈다.
“…허준은 비택(肥澤·광채가 나고 혈색이 좋음)하여 승려와 흡사했고, 입을 열면 늘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의 초상화를 보았는데 곡진(曲盡·간곡하며 정성스러움)하면서도 완용(莞容·빙그레 웃음)하는 모습을 띠었다.”(<분서집>)
이 대목에서 ‘너희가 허준을 아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려본다. 한국고전DB에서 ‘허준’, 이름 두 자를 쳐보면, 대략 117건(선조~광해군·중복 제외)의 실록 기사가 검색된다. 그런데 그 중 60%에 이르는 70건 정도가 허준의 탄핵을 둘러싼 기사다.
■결정적인 출세의 기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569년(선조2) 미암 유희춘(1513~1577)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온 허준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52살 때인 1590년 12월이었다. 이때 왕자(광해군 추정)가 두창(천연두·마마)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19세기 종두법이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두창은 무시무시한 치사율을 보인 역병이었다. 그러나 뚜렷한 치료법은 없어서 그저 무속의 힘을 빌려 낫기만을 바랐다.
선조 때도 그랬다. 이미 3년전(1588년) 셋째 왕자(의안군)와 공주를 두창으로 잃은 바 있었다.
선조가 발을 동동 굴렸지만 의관들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으니 기다려봐야 한다”고 수수방관했다.
그렇게 생때 같은 자식 둘을 잃었는데, 또 다른 왕자까지 ‘죽을 병에 걸린’ 것이었다.
전전긍긍한 선조는 선배 어의들이 나서지 않자 허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네가 한번 약을 써서 고쳐봐라.”
특명을 받은 허준은 홀로 각종 의서를 참고한 뒤 왕자의 약물치료에 나섰다. 그러나 처음엔 여의치 않았다.
“마침 한겨울(음력 12월)이어서 독기와 열이 한 곳으로 뭉쳐 왕자의 증세가 악화되었다. ‘(허준의 처방) 약 때문’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그러나 선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준을 믿어줬다. 마침내 신령스러운 영약 몇 종을 찾아 세 번 투여하니 왕자가 세 번 모두 일어났다.”
허준의 투약 덕분에 “왕자의 험악한 증상은 사라지고 완전히 회복했다”(<언해두창집요> ‘서문’)는 것이다.
■신비의 묘약
그렇다면 허준이 왕자의 치료를 위해 썼다는 ‘신약’, 즉 ‘신비의 영약’은 무엇일까.
<언해두창집요>의 서문 말미에 ‘두창’의 치료 약제를 언급하면서 ‘저미고’와 ‘용뇌고자’를 콕 찍었다.
“이 책(<언해두창집요>) 하나면…급한 치료에 도움이 될 것…저미고와 용뇌고자는 백발백중의 약…기사회생하는 것이 그림자나 소리보다 빨라서 비록 목숨을 관장하는 귀신이라도 이보다 더 신묘하지는 못할 것….”
‘저미고’와 ‘용뇌고자’는 용뇌(龍腦·약재의 일종)와 돼지 심장 또는 꼬리의 피를 활용하여 만든 방제이다. 두창의 흑함(黑陷·천연두에 걸려 생긴 발진이 곪을 때에 피가 나고 빛깔이 검어지는 증상) 증상에 쓰는 것이다. 특히 저미고는 강력한 방향성으로 소통시키는 용뇌와, 계속 움직이는 돼지 꼬리의 성질을 얻어서 두창의 독을 바깥으로 몰아내고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조성됐다.
“(왕자의 완쾌 이후 소문이 퍼졌고) 이 약재를 10번 쓰면, 10명이 모두 살아나니 그 효과가 신기할 따름…그 후 왕자와 공주가 마마에 걸렸을 때 약을 써서 모두 회복…일반 백성이 생명을 보전한 것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언해두창집요> ‘서문’)
허준은 두창에 걸린 왕자와 공주는 물론 수없는 백성들을 이 신약으로 되살렸다고 자랑한 것이다.
■첫번째 비토
선조는 왕자를 살려낸 허준에게 대단한 상을 내렸다. 허준을 당상관(정3품)으로 가자(加資·품계를 올려주는 일)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선조실록>1590년 12월25·1591년 1월3일)
그러나 곧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이것이 허준에 대한 첫번째 비토, 즉 탄핵이었다.
대간들(사간원과 사헌부) 등은 이후 10차례의 끈질긴 상소전을 교대로 벌이며 ‘허준의 가자’를 비판했다.
“허준이 어의라는 직분으로 왕자의 병을 치료한 것입니다…자기 일입니다. 그런 허준을 당상관으로 품계를 올리다니…상급이 지나칩니다….”(<선조실록> 1591년 1월3일)
그러나 선조는 “…이 아이의 누이도 두창으로 잃었다. 이번에 살아날 가망이 없던 아이가 다시 깨어난 것은 허준의 공이니, 품계를 올려 그 공을 갚겠다”(1월4일)고 일축했다. 선조는 대간들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 왕자의 은인인 허준을 당상관으로 승급시켜준 것이다.
허준은 승승장구했다. 5년 뒤(1596년 3월3일) 동궁(광해군)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동반직(문관직)으로 승급됐다. 서자 출신에게 ‘문관’의 대접을 해준 것이다. 이전까지 허준의 관작은 정3품(차관보) 통정대부였다. 선조는 그런 허준에게 종2품 가의대부(차관급)까지 승급시켰다.
선조가 허준에게 ‘새로운 의서’(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을 맡긴 것이 그 해였다.
■공신 반열에 오른 허준
그러던 허준에게 또 한 번의 영예가 찾아온다. 1604년 6월25일 발표된 임진왜란 공신 명단에 ‘호성공신 3등’ 자격으로 ‘양평군’의 군호(君號·군으로 작위를 내릴 때의 명칭)를 받았다. 그와 함께 종1품(부총리~장관) 숭정대부로 승급됐다.
호성공신은 의주로 피란한 선조를 끝까지 호종(임금의 호위하며 따름)했던 86명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의 허준 등 의관 2명, 내시 24명, 이마(마부 및 마의) 6명, ’별좌 및 사알‘(왕명 전달) 2명’도 포함되었다. 실록의 사관은 “전쟁의 공신을 뽑는데 호종신을 86명이나 뽑고, 그중 내시가 24명, 다른 미천한 자들이 20여명이었으니 얼마나 외람된 일이냐”고 한탄했다.
그러나 선조가 이른바 ‘천 것들’에게 공신 타이틀을 내린 이유가 있었다.
“상(선조)이 피란을 떠날 때…명망 진신들이 모두 상의 곁을 떠나…의주에 이르기까지 선조를 따른 문무관은 겨우 17명…나머지는 환관 수십 명과 어의 허준, 액정원(왕명 전달 하급관리) 4~5명, 마부와 말관리인 3명 등….”(<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1일)
이때 선조는 “사대부가 도리어 너희들만도 못하다”라고 넋두리 했다.
선조가 내린 허준의 <공신도감의궤>를 보라.
“임진년 6~7월 사이…장마철에 천리 먼 길을…가는 동안 자주 건강을 잃을 때마다 그대의 돌보는 힘에 의지했다. 위급한 시기에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약을 써서 병을 고쳤고…그런 마음을 끝까지 변치 않았도다.”
■아니꼬운 허준의 출세
그런데 허준의 공신 작위를 끝까지 아니꼽게 여기는 시각은 만만치 않았다.
허준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 공신으로서 종1품 자리에 오른 사실을 고하기 위해 휴가원을 냈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사간원이 늑달같이 허준을 탄핵했다. “어의가 사사로운 일로 감히 침을 맞고 회복 중인 성상(선조)의 곁을 떠나 휴가를 보냈다”(17일) “전혀 반성을 모르는 교만방자한 허준을 국문하고 파직해야 한다”(19일)는 것이었다.(<선조실록> 1605년 9월 17·19일)
선조는 “허준이 공신이 된 후에 조상의 산소를 찾은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두둔해주었다. <선조실록>은 “허준은 임금의 은혜를 믿고 교만하기 때문에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많았다”(19일)고 촌평했다.
■허준을 정승급으로?
그럼에도 선조의 허준 총애는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1606년 1월) 선조는 허준에게 깜짝선물을 안겨준다. 임금의 지병을 잘 고쳤다는 이유로 허준을 보국숭록대부(정1품)로 올린 것이다.
정1품이라면 18품계 중 최상위 계급이며 3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에 해당되는 관작이다.
이 경천동지할 소식에 사헌부와 사간원은 ‘신분질서 파괴’라며 아우성 쳤다.
“…의관이 ‘숭록(종1품)’이 된 것도 전례 없고, 그마저 외람된 일인데, 여기에 ‘보국(정1품)’은 또 웬 말입니까.”(<선조실록> 1606년 1월3일)
이 문제를 두고 사헌부와 사간원은 14차례에 걸쳐 상소를 올린다. 선조는 결국 6일 만인 1월9일 허준의 승급이 취소됐다. 조정에서 ‘허준 비토’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대목이다.
■하늘이 무너지다
그런 허준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다. 1608년 2월1일 든든한 버팀목이던 선조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조짐은 1607년 10월부터 있었다.
선조가 아침에 방 밖으로 나오려다가 쓰러진 이후 갖가지 약재처방으로도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선조실록> 1607년 10월9일) 급기야 “수의 허준이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해 임금의 병세가 악화했다”는 탄핵론이 부각되었다.(11월13일)
사실 이 때의 허준은 당파 싸움의 속죄양이었다. 당시 수어의는 허준이었지만 내의원 도제조(정1품·자문명예직)는 소북파의 영수 유영경(1550~1608)이었다. <선조수정실록> 1607년 11월1일조를 보자.
“당시 유영경이 약방 도제조였으므로 (대북파가) 먼저 허준에게 ‘약을 잘못 썼다’고 논죄한 다음 유영경의 지위를 동요시키려 했다.”
대북파가 허준을 탄핵함으로써 ‘소북파 영수(유영경)’를 공격한 것이다. 이 ‘허준 탄핵론’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11월13~21일 사이에 무려 18번의 상소가 핑퐁식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선조는 “몸도 편치 않은데 수의를 죄줄 수 없으니 논의를 그치고 그 의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라”(11월15일)고 허준의 탄핵을 불허한다.
■유배와 귀환
결국 선조가 승하(1608년 2월1일)하고, 광해군이 즉위했다. 그때까지 억눌려있던 허준에 대한 질시와 반감이 봇물처럼 터진다.
3월10일 사간원은 “허준은 음흉하고 외람스러운 사람”으로 폄훼하면서 허준의 죄상을 까발렸다.
“허준은 어의로써…옥체(임금의 몸)가 편치 않은 데도 한기(寒氣)를 높이는 약을 잘못 써서 마침내 천붕(天崩·임금의 죽음)의 슬픔을 불렀으니…국문하여 법에 따라 처벌하소서.”
대간들의 탄핵상소는 무서웠다. 3월10~28일 사이에 무려 14차례에 걸쳐 “허준을 위리안치(圍籬安置·유배지에 울타리를 쳐서 가두는 처벌)시키라”고 아우성 친다.
광해군은 ‘위리안치’가 아닌 ‘중도부처(단순 유배형)’의 처벌을 내린다. 유배 중에도 “허준을 위리안치 하라”는 대간들의 상소가 이어졌다.(1609년 4월 21·23·24일)
그러나 광해군은 대간들의 끈질긴 탄핵을 일축했고(1609년 4월24일), 결국 1년 8개월만인 1609년 11월 22일 방면해준다. 광해군은 “허준은 호성공신이고 나에게도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 했다.
“…내가 마침 병이 많은데 내의원에는 명의가 적다…이제 석방하는 것이 가하다.”(<광해군일기> 1609년 11월22일조)
이를 두고 “허준의 죄상은 임금을 시해한 것과 같다”(<선조실록> 22일·사관)고 평가했고, “석방 명령을 거두어 달라”(23일·사간원)고 촉구했다. 9번의 상소가 올라왔다. 그러나 광해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의원에 복귀한 허준은 임금의 병을 돌봤다.
■토종 악재를 우리말로
허준의 삶이 여기까지였다면 어떨까. 선조와 광해군을 잘 모신 덕분에 주변의 질시와 비판 속에서도 공신이 되었고, 종1품(부총리급)까지 출세한 국왕 주치의로만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은 임금(선조와 광해군)의 명을 받고 다시 백성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1596년 5월 시작하여 1610년 8월 완성된 <동의보감>의 편찬이다. <동의보감> 서문은 선조가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하는 장면을 전한다.
“선조는…병신년(1596) 태의 허준에게 ‘의서를 편찬하라…외진 시골에는 약이 없어 죽는 이가 많다. 우리나라에 향약이 많이 생산되는데도 사람들이 모른다. 그대는 약초를 분류하면서 향명(鄕名·민간의 명칭)을 함께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1610년 8월6일 14년 만에 <동의보감>이 완성되자 광해군의 촌평은 어떤가.
“허준이 선왕(선조)의 명에 따라 지금까지 노심초사…귀양지에서도 그치지 않았고, 노력한 결과 비로소 편질을 완성하여 올렸다.”
■‘사람을 살린 일이 부지기수’
모두 25책으로 된 <동의보감>은 1212종의 약에 대한 자료와 4497종의 처방을 수록한 불후의 의서이다. 86종에 이르는 국내외 의서들을 총정리했기에 임상의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필독서가 되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병든 백성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그는 이 땅에서 나는 637개 향약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여 백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야말로 동의보감 편찬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동의보감> 뿐이 아니다.
예컨대 1612년(광해군 4년) 12월 전염병(온역·티푸스성 질환)이 급속도로 퍼지자 허준은 광해군의 명을 받아 ‘전염병 매뉴얼’인 <신찬벽온방>을 편찬했다.(1613년 2월)
이정구는 <신찬벽온방> 서문에서 “이 책의 편찬으로 누추한 시골의 후미진 골목이라도 다 처방문을 의지하여 구해 살게 되었다”고 했다.
또 <벽역신방>(1613)은 그 무렵 북쪽에서 유행한 성홍렬에 대한 책이다. <벽역신방>은 동아시아 3국을 통틀어 성홍열과 유사질환을 구분해낸 최초의 성과였으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고 정확한 홍역연구서로 꼽힌다.
이밖에 앞서 인용한 두창 관련 치료책인 <언해두창집요>(1608)와, 진맥학 학습서인 <찬도방론백결집성>(1612), 산부인과 의학서인 <언해태산집요>(1608), 응급조치용 약방문인 <언해구급방>(1607) 등도 있다.
의성 허준의 진면목을 알려준 소개한 기사가 있다.
역대 의학자들의 전기인 <의림촬요>(‘역대의학성씨)다.
“허준은…경전과 역사에 박식했다. 특히 의학에 조예가 있어 신묘함이 깊은데 이르렀다. 사람을 살린 일이 부지기수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사람을 살린 일이 부지기수”라는 말이 의사 허준의 삶을 규정해주지 않는가.
(이 기사를 위해 김충배 허준박물관장,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가 도움말과 자료를 전해주었습니다. 허준 선생의 진면목을 알려면 허준박물관을 찾아 가보시기 바랍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최영성, ‘동의보감 초고본에 관한 연구-허준의 집필 구상이 담긴 초고본’, <연민학지>, 연민학회, 2015
김호,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일지사, 2000
신동원,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들녘, 2015
허준박물관, <조선의 의사들, 인을 실천하다>(박물관 개관 20주년 특별전 도록), 2025
허준박물관, <조선에서 세계로-동의보감>(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5주년 특별전 도록>, 2024
[주간경향] “눈이 한번 왔다 하면 어마어마하게 다 파묻힌다고 해서 왕산골 아닙니까. 그런데 올해는 반의반도 안 왔죠.” 강원도 강릉 왕산골마을에서 만난 김경문씨가 말라비틀어진 작물을 트럭으로 실어나르며 말했다. 강릉시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3㎞쯤 위에 있는 왕산골마을은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인 설경으로, 여름에는 맑고 넉넉한 수량을 자랑하는 계곡으로 관광객들의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은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김씨는 “손바닥만 한 땅에 뿌릴 물도 넉넉하지가 않다”며 “손님들(관광객)한테 오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왕산골마을을 끼고 백두대간로를 따라 오봉저수지까지 이어지는 왕산천은 50m 폭의 교량이 가로지를 만큼 수량이 풍부한 곳이었다. 하지만 강릉 지역 마른장마가 극한에 달하던 지난 8월 25일, 왕산천은 밭고랑 사이를 흐르는 도랑만도 못한 실개천으로 변해 있었다. 물줄기로 가득했어야 할 계곡은 잡초만 무성하고, 왕산골 8경 중 하나인 임내폭포는 표지석 없이는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왕산천이 흘러 당도하는 오봉저수지 상황은 더 심각했다. 힘겹게 흘러내린 물줄기는 중앙의 수원까지 흐르지 못하고 저수지 한쪽 웅덩이에 고이는 데 그쳤다. 저수지 상류는 물이 마른 지 오래인 듯 잡초 무성한 황무지가 됐고, 물이 빠진 저수지 사면은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깎아지른 절벽으로 변했다.
오봉저수지는 강릉시에 필요한 생활용수 87%를 담당한다. 여기서 생활용수를 공급받는 인구만 18만명에 달하는데, 이날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17.4%로 평년 저수율(69%)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1977년 저수지 조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최근 6개월 강릉의 평균 강수량은 평년 대비 49.4%인 386.9㎜에 그쳤다. 6~8월 강수량만 놓고 보면 187.1㎜로 평년의 30%에도 못 미친다. 시에 따르면 제한급수 이후에도 하루평균 0.5%씩 저수율이 낮아지고 있어 저수지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는 건 사실상 시간문제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9월까지도 뚜렷한 비 소식이 없다는 점이다. 당장 서울 출근길 폭우 소식이 전해진 25일에도 강릉에는 푹푹 찌는 무더위가 이어졌다. 밤새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경기 북부와 달리 강릉에는 26일 겨우 1㎜의 비가 흩날리는 데 그쳤다.
강릉시가 지난 20일부터 상수도 계량기의 밸브를 50% 잠그는 긴급 제한급수까지 돌입했지만, 외견상 강릉 시내의 풍경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해수욕장은 폐쇄됐지만, 해변에서는 여전히 적지 않은 피서객이 늦여름을 만끽하고 있었고, 주변 상가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세차장이나 목욕탕, 사우나처럼 물 사용이 필수인 업종도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물 절약 실천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가뭄 극복 물 절약에 동참해주세요” 같은 현수막이 없었다면 동해안의 다른 도시들과 차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평온한 분위기와 달리 시민들의 불안감은 적지 않았다. 안목해변에서 만난 A씨는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에서 물이 끓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면서 “비는 작년부터 안 왔는데 제대로 대책을 못 내놓아 결국 일을 벌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저수지가 말랐다는 얘기가 나온 게 언젠데 시에서는 관광객들 더 오라고 난리”라면서 “상인들한테는 안타깝지만 단수되면 결국 상인들도 다 망하는 것 아니었냐”고 시를 탓했다. 그는 “제한급수가 시작되고 세탁을 미리 하는지 매일 밤 세탁기를 더 돌리는 집도 있다”며 “이러다가 아파트에 싸움 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릉항에서 만난 옥지환씨는 “시에서 단수가 되더라도 식수는 어떻게든 공급한다는 걸 보니 아무래도 곧 단수될 것 같다”면서 “그래서 생수나 햇반 같은 것은 미리 사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수도 있고, 물티슈도 있으니 마시거나 씻는 것은 그래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물이 끊어지면 화장실을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라면서 “(단수되면) 정해진 시간에만 물을 틀어줄 수도 있다고 해서 화장실 때문이라도 대형 대야도 주문해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릉시에서는 지난 7월 14일부터 공원 등 시내 공공화장실부터 문이 잠갔다.
방학이 끝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걱정도 태산이다. 가뭄으로 단축 수업이나 휴업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게 되면서다. 당장 교육 당국은 저수율이 15% 아래로 내려갈 경우 단축 수업과 급식 중단을 검토 중이다. 또 완전 단수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휴업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학사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인 만큼, 돌봄에 대한 걱정은 물론 방학 일정 조정이나 보충수업 등으로 학습 공백을 채울 수 있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속초에서 살다 얼마 전 강릉으로 이사를 왔다는 김희영씨는 “원래 동해안에는 태풍이 와서 큰비가 한 번씩 내리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태풍도 안 오고 그래서 더 가물었다”면서 “얼마나 비가 안 왔으면 ‘하필 태풍도 안 오냐’는 얘기가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린다”고 말했다.
강릉시는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5% 아래로 내려가면 현재 50%인 제한급수를 25%까지 줄인다는 계획인데, 현재 추세로는 25% 제한급수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저수율이 더 내려가면 전면 단수도 불가피하다. 벌써 영업 차질이 겪기 시작한 자영업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금학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B씨는 “(제한급수가 시작되면서) 주방에서 물을 받을 때 콸콸 나오던 게 이제 졸졸 나오는 수준”이라며 “(물을 받는 시간도) 두 배씩 걸리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영업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초당 순두부처럼 물을 많이 사용하는 식당의 경우 추가 제한급수는커녕 지금도 영업이 어려울 것”이라며 “단수되면 시내 음식점들은 완전히 올스톱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답답해서 시청에 연락을 해봐도 자기들도 9월 둘째 주 이후에 어떻게 될지에 대한 플랜이 없다고 말한다”며 “식수는 배급한다 쳐도 식당 영업이 중단되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줄 수 있냐”고 되물었다.
때문에 전면 단수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보자는 자영업자들의 노력도 잇따르고 있다. 홍제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C씨는 꼬박꼬박 요금을 내고 있는 정수기의 전원을 빼고 지난달부터 생수를 따로 주문해 음료를 만들고 있다. 이날 방문한 C씨의 카페 앞에는 500㎖짜리 생수병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C씨는 주문이 들어오면 생수병을 열어 계량한 뒤 음료를 만들어 제공한다. 그는 “물값은 물값대로 나가고 정수기 대여 비용도 계속 나가지만, 지금 같은 가뭄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생수 사용을 시작하게 됐다”며 “설거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아예 컵도 더 주문해서 그냥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릉시는 이 같은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지난 21일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강릉시는 이와 함께 남대천에서 하루 1만t, 연곡정수장에서 3000t을 끌어오는 응급조치를 통해 오봉저수지 고갈을 최대한 늦출 계획이다. 또 중장기 대책으로 지하수저류댐 설치, 연곡정수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다른 곳에서 끌어오는 물은 한계가 있을 뿐더러 중장기 대책으로 거론되는 지하댐 역시 2027년 이후 완공된다. 때문에 오염 논란으로 2001년부터 방류가 중단된 도암댐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도암댐에는 현재 3000만t의 물이 저수돼 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도암댐은 평창 개발 시점에 오수가 많이 유입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현재는 수질이 상당이 개선된 상태로 정화작업을 거치면 농업용수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강릉시에 도암댐 용수 활용 문제를 제안했지만, 강릉시 자체의 문제로 무산됐고 결국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의 성공모델(지하댐)을 무조건 가져온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며 “도암댐은 오염물질 정화와 인(p) 제거를 통해 2급수로 수질을 개선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관로만 정수장에 연결하면 1~2년 안에 용수 활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도암댐을 찾아 강릉시 가뭄 해소 방안으로 이 댐의 활용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인근 정선 주민들은 도암댐에서 물을 내보내면 송천으로 유입돼 정선의 상수원이 오염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지역 주민 간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도 보인다. 강원 정선군번영회를 비롯한 정선군 9개 읍·면 번영회는 “1995년 취수탑 공사로 인한 퇴적물 방류로 하천과 생태계, 식수원까지 오염돼 지금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며 “도암댐 물로 강릉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으며, 정선군과 하류 주민들을 무시하고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상화될 기후재난에 대비해 물관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매년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의 원인을 언제까지나 기후변화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면서 “원점으로 돌아가 수요 관리와 빗물 재활용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인의 하루평균 물 사용량이 300ℓ 이상인 반면 싱가포르나 독일 같은 경우 절반인 130ℓ를 쓰면서도 부족하다는 말이 안 나온다”며 “지금까지는 모자라면 만들어주자는 식의 공급 관리만 했다면 이제는 수요자 측 관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번에 15ℓ씩 물을 쓰는 변기를 6ℓ짜리 물 절약 변기로만 바꿔도 물이 획기적으로 절약된다”며 “강릉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댐을 짓고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변기를 모두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강릉이 비 좀 와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내일 당장 비가 온다고 한들 받아둘 곳은 있느냐”며 “빗물을 저장하고 이를 통해 식목 관리 용수나 소방 용수 등 상수도 수요 일부를 대체하는 ‘빗물저금통’ 같은 시설이 가정마다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전북 전주시 전주천 산책로 주요 구간에서 오는 10월부터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순찰 로봇이 시범 운용된다.
전북자치경찰위원회는 27일 “전주천 산책로에 순찰 로봇 1대를 시범 배치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순찰 로봇은 성인 무릎 높이 크기에 네 바퀴가 달린 작은 자동차 형태로 산책로와 갈대밭 사이를 천천히 이동하며 주변을 살핀다. 만약 사람이 쓰러지거나 납치 등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즉시 경고음을 울리고 관제센터로 영상을 전송해 신속 대응이 가능하다.
이 로봇은 단순한 감시 장치를 넘어 AI, 적외선 센서, 열화상 카메라 등 첨단 기술이 결합돼 있다. 탑재된 지능형 폐쇄회로(CC)TV와 열화상 카메라는 어두운 밤에도 갈대밭에 숨어 있는 사람을 탐지할 수 있으며 쓰러짐이나 비명 같은 이상 행동을 실시간으로 관제센터에 전달한다.
이번 사업은 전주대학교가 주관하고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전북본부가 참여했다. 로봇은 KETI와 자율주행 로봇 기업 뉴빌리티가 공동 개발했다. 운용에는 전북경찰청과 전주시도 함께 협업한다.
자치경찰위원회는 순찰 로봇 외에도 공중화장실 불법 촬영 범죄를 막기 위한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칸막이 상단에 동작 감지 센서를 설치해 신체가 올라오면 경고음을 울리고 자동으로 112에 신고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 역시 오는 10월부터 실증 단계에 들어간다.
전주천은 생태하천으로 지정돼 방범 시설이 부족하고 조도가 낮아 야간 순찰 강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자치경찰위원회는 내년부터 순찰 로봇 운용을 확대해 초등학교 주변과 원룸 밀집 지역 등 치안 취약지에도 배치할 계획이다.
이연주 전북자치경찰위원장은 “자율순찰 로봇이 예상 성능을 충분히 확보했다”며 “지역 치안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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